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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고승욱] 불공정한 사회

[데스크시각-고승욱] 불공정한 사회 기사의 사진

엊그제 편집국 선배들과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Zeitgeist)’을 놓고 이야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이라는 이슈로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후 경제 살리기를 앞세워 당내 경선을 뛰어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핵심인 시대정신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선거운동의 기본이다.

내년 대선에서 시대정신이 무엇이고, 누가 선점하겠느냐를 토론하다 한 선배가 ‘공정(公正)’을 꺼냈다. 대선까지 1년 넘게 남은 시간에 남북관계를 비롯해 굵직한 이슈가 어디서 어떻게 불거질지 알 수 없다. 공정이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될지, ‘정의와 통합’으로 어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공감이 가는 시대정신이다.

공정한 사회는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를 맞아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제기한 이슈다. 그 후 이 단어의 매력이 우리 사회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국정기조로 삼겠다는 청와대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잘못을 비판할 때마다 공정한 사회는 중요한 잣대가 됐다. 국회에서 법조개혁안이 논의될 때도, 금융권의 모럴 해저드를 이야기할 때도, 심지어 노조의 ‘세습고용’ 요구 논란에서도 공정이 키워드다. 그만큼 우리 주위에는 불공정한 일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직전 VIP 고객에게 연락해 예금을 찾아가도록 했다.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를 넣어놓고 근근이 살아온 일반 예금자들은 시위를 벌였다. 힘없고 돈 없는 설움에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내 돈을 마음대로 찾아가지 못하는데 부자와 권력이 있는 사람은 특혜를 받아 유유히 돈을 빼갔으니 공정하지 못하다. 심지어 검찰은 영업정지 사실을 미리 알려준 금융당국 관계자가 있는지 수사하고 있다. 이들의 비겁함이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반 예금자들이 시위를 할 때 ‘대검 중수부가 정의를 지켜 달라’는 플래카드가 등장한 건 아이러니다. 공정한 사법시스템을 만들겠다며 국회 사법개혁제도특별위원회가 큰맘 먹고 내놓은 개혁안이 중수부 폐지이기 때문이다. 사개특위의 법조개혁안은 최근 중수부 폐지와 대법관 증원문제로 비화되면서 갑자기 동력을 잃었다. 하지만 플래카드 한 장 속에는 서민들이 보는 시각이 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런 기구, 저런 기관을 설치하고 폐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검찰은 법을 어겨가며 불공정한 게임을 하는 사람을 찾아 수사하고, 법원은 정의롭게 이들을 처벌하라는 게 일반 국민의 생각이다. 최근 논의되는 식으로 말하면 먼지털이식 수사, 별건수사, 미리 결론을 내린 수사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게 하고, 전관예우 관행을 없애라는 것이다. 국회가 전관예우를 제한할 변호사법 개정안은 먼저 처리하겠다지만 원안이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1년 반 만에 300억원 가까이 벌어들인 스캘퍼들도 공정하지 못한 게임의 특혜를 받았다. 증권사는 검찰에 구속된 스캘퍼 네 명에게 본인 확인 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해줬다. 스캘퍼의 컴퓨터는 내부 전산망에 직접 연결돼 일반 투자자보다 빨리 주문을 처리할 수 있었다. 초를 다투는 단타매매에서 혜택을 받지 못한 개미투자자들은 견뎌내지 못했다. 물론 게임의 룰을 조작한 증권사는 매달 수수료로 4억여원을 벌었다고 한다.

공정한 사회를 주창한 임 실장이 청와대로 간 뒤 비어 있던 분당을 선거구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당선됐다. 손 대표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 땅에 정의를 세우겠다’고 외쳤다. 빠듯한 출퇴근 시간을 쪼개 투표장에 들렀던 30, 40대 직장인들이 손 대표의 정의론에 얼마나 호응했는지는 계량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가 공정한 사회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불공정하게 행동한다는 데 공감했을 것이다. 정의의 여신은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공정은 상대가 누구인지 고려하지 않고 휘두르는 양면의 칼이다.

고승욱 사회부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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