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69) 아무리 예뻐도 그림 기사의 사진

‘잠깨어 나가니 찬 기운 감돌고/ 귀밑머리 반듯해도 적삼이 얇구나/ 늦게 오는 봄 그녀가 하마 두려워/ 꽃가지 꺾어 들고 혼자서 본다네.’ 그림에 적힌 시가 사느랗다. 초봄이 늑장 부려 꽃은 피어도 아침이 차다. 여인은 한 송이 꽃을 꺾어 게으른 봄을 부른다.

얹은머리에 윤기 나고 새샐새실 웃는 얼굴이 사랑옵다. 고작 한 뼘 삼회장 노란저고리는 도련 아래가 아찔하다. 젖가슴 부풀어 고름이 팽팽하다. 어깨는 가냘프고 소맷부리는 조여드는데 꽃을 든 섬섬옥수가 마냥 곱다. 쪽빛 오른치마에 감아올린 주름선 사이로 안감이 수줍게 비친다. 저 항아리치마 펼치면 굽이굽이 열 폭이다.

신윤복의 붓질을 따라간 이름 모를 후배의 솜씨다. 미인이라 그렸을 테고, 품음직해서 두고 봤을 테다. 신분이야 당연히 기생이다. 반가 규수를 그려놓고 희희덕거릴 순 없던 시절이니까. 정조대의 문인 이옥은 기생의 심정을 속속들이 알았다. 그는 집적대는 남정네를 밀쳐내는 기생을 시로 적었다. ‘머리 기대지 말아요/ 동백기름 옷에 묻어요/ 입술 다가오지 마세요/ 붉은 연지 옮겨요.’ 저 기생이라면 능히 부릴 만한 아양이다.

기생이 단수 높다지만 한량의 아내는 머리꼭지에 앉아있다. 육탐(肉貪)하는 사내치고 너저분하지 않은 녀석 드물다. 질탕 놀다 온 한량의 꼬락서니가 멀쩡하겠는가. 이옥은 그 아내의 눈썰미까지 시로 남겼다. ‘술만 마시고 왔다지만/ 기생과 논 줄 나는 알아요/ 어찌하여 두루마기 소맷자락에/ 연지가 꽃처럼 물들었나요.’ 기생이 예뻐도 그림은 풍경일 따름이다. 네 이웃의 여자를 탐하지 말지어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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