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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신종수] 말뿐인 공정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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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저축은행은 대표적인 서민금융기관이다. 예금자보호 한도가 5000만원밖에 안 되지만 이자를 조금 더 준다는 이유로 많은 서민들이 어렵게 번 돈을 이곳에 맡겼다. 그러나 부산저축은행 오너와 경영진은 이 돈으로 지난 10년 동안 불법적인 사업을 하고 수백억원의 배당금과 월급을 챙겼다. 이 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해 서민들은 돈을 날렸는데 오너와 경영진은 영업정지 직전에 자신과 친인척의 돈을 미리 빼냈다. 이런데도 금융감독원은 감독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오히려 가담했거나 봐준 흔적이 역력하다.

대단히 불공정하고 반서민적이다. 공정사회와 친서민을 내세운 정부로서는 할말이 없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이례적으로 금감원을 방문해 강도 높게 질책한 것도 이번 사태가 공정사회와 친서민 정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분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공정사회와 친서민 정책은 공정하고 서민들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이명박 정부는 초기에 ‘친기업’ 정책을 내세웠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 10년 만에 들어선 보수정권으로서는 당연한 듯했다. 고환율, 저금리, 감세 정책 등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대기업을 지원했다. 2008년 닥친 금융위기도 이 같은 친기업 정책 덕분에 비교적 빨리 벗어났다. 세계 7대 수출대국, 6% 경제 성장 등의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대기업들은 수조원씩 이익을 남기는데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어려웠다. 전세난과 물가고 와중에서 많은 중산층이 서민으로 전락하고 빈부격차도 커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비롯해 지난 4·27 재보선까지 여당이 참패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대기업들이 번 돈을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흘러가게 해야겠다는 것이 여권의 생각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대기업에 투자와 고용확대,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공정사회와 친서민 정책은 여권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내세운 정책이다. 한마디로 선거 전략인 셈이다.

물론 이들 정책의 동기야 어떻든 추구하는 방향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면 진정성이 떨어진다. 진정성이란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선행상을 받기 위해 착한 일을 하는 게 뭐가 나쁘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마음이 착하고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은데 상을 받기 위해 겉으로 선행을 드러내는 것은 외식(外飾)이다.

공정하고 서민들이 잘 사는 나라는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표가 돼야 한다. 득표 수단으로 추진하는 정책은 더 좋은 다른 득표 수단이 생기면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다. 친기업에서 친서민으로 표변했듯이, 친서민도 필요하면 친재벌로 바뀔 수 있다.

어찌 보면 공정사회와 동반성장, 친서민은 정책 이전에 우리 사회가 당연히 추구해야 할 가치와 문화다. 누가 공정하지 못한 사회, 불균형한 성장, 반서민적이기를 바라겠는가. 공정사회와 동반성장, 친서민은 기업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하는 ‘동반성장 선포식’으로 이뤄질 수 없는 가치들이다. 기업들이 동반성장 선포식 기사만큼은 제발 크게 써달라고 부탁하는 데서도 정부가 얼마나 기업에 유무형의 압력을 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에 대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의 조사로 동반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초과이익공유제’나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같은 반재벌 정서에 기대는 방식으로도 달성될 수 없다. 구호나 강제에서 벗어나 진정성과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부산저축은행 사건 같은 불공정하고 반서민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신종수 산업부장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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