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임한창]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기사의 사진

“오사마 빈 라덴의 처참한 죽음은 악에 대한 심판인가. 그 죽음은 정당한 것인가. 일본 대지진은 하나님의 저주인가. 세상의 악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하나님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 속의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기자가 요즘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사람들은 ‘그렇다’와 ‘아니다’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주길 원한다.

지구촌에는 우리가 모르는 참혹한 일들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단지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만 보고, 듣고, 반응한다. 지구촌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는 무려 8억명. 아프리카 인구 7억명 중 2억명이 기아 상태다. 1분에 34명, 하루에 5000명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 일본 지진 희생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참사다. 그러나 이런 뉴스는 관심 밖이다.

인간의 지식은 편협하다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을 놓고도 미국교회가 상반된 ‘성구(聖句) 논쟁’을 벌이고 있다. 릭 워런 목사를 비롯한 복음주의 진영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다”(잠언 21장 15절)를 인용하며 죽음을 정당화한다. 반면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라”(잠언 24장 17절)는 말로 절제를 요구한다. 하나님은 과연 ‘악인의 죽음’을 어떻게 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루는 학문이 ‘신정론(神正論)’이다. 신정론은, 하나님은 항상 바르고 의롭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즉, 전능하고 선한 하나님이 그 뜻을 완성하기 위해 때로는 ‘악’과 ‘화’를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학설이다. 신정론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인물이 욥이다. 하나님은 의인 욥에게 숱한 ‘화’를 준 다음, 결국 축복으로 화답했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을 사용하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사람이 모두 알 수는 없다. 우리가 알고 느끼는 지식이란 지극히 편협하다. 교통사고로 어린 자녀를 잃고 오열하는 여인, 암으로 사망한 남편의 주검 앞에서 입술을 떨며 울부짖는 젊은 아내, 갓 태어난 아기의 죽음을 통보받은 산모의 눈물…. 하나님은 왜 이런 무고한 죽음으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실까.

기자는 미국 듀크대학교 스탠리 하우어워즈 교수와 이 시대 최고의 설교자 윌리엄 윌리몬이 집필한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에서 그 복잡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나그네’ 또는 ‘거류민’의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 거류민은 외국인이다. 주거는 가능하지만, 시민권은 없다. 거류민은 후손에게 모국의 가치를 전수하고 들려주어야 한다. 교회는 식민지다. 교회는 타문화의 중심에 자리한 ‘문화의 섬’이다. 교회여!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라. 먼저 교회가 변하라. 교회가 바로 사회윤리다. 교회가 종말론적 긴장을 잃으면 현실에 안주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해낼 뿐이다.”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세상의 교포다. 하나님의 나그네로 잠시 세상에 거류하고 있다. 국적은 하늘나라다.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 인간은 광야의 올빼미, 황폐한 곳의 부엉이, 지붕 위의 참새처럼 외로운 존재다. 그러나 돌아갈 본향(本鄕)이 있기에 소망이 있다. 끔찍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나직하게 들려오는 음성이 있다.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이사야 55장 8절)

임한창 종교국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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