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데스크시각

[데스크시각-배병우] “문제는 성장률이 아니야”

[데스크시각-배병우] “문제는 성장률이 아니야” 기사의 사진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세계 선거 역사에 길이 남을 히트작을 남겼다. 빌 클린턴 후보의 선거 구호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가 그것이다. 홍보 전략가 제임스 카빌 작품인 이 캐치프레이즈는 무명의 아칸소 주 시골뜨기 클린턴을 백악관에 입성시킨 요술지팡이였다. 걸프전 승리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선거 초반 91%의 지지율 속에 연임이 유력했다. 하지만 불황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던 민심을 파고든 이 구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도 선거전의 이슈를 경제로 끌고 가 승기를 잡았다. 노무현 정부의 이념 과잉과 부동산값 급등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을 빨아들인 것은 ‘경제를 확실히 살리겠다’는 이 후보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양측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문제는 경제야’ 캐치프레이즈의 각론 격인 ‘7·4·7’부터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 구상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잠재성장률이 4% 초반에 불과한 우리 경제에서 연 7% 성장 목표는 무리를 해서라도 양적인 성장만을 좇겠다는 선언이었다. 고용과 소득 양극화 등 성장의 질에 관한 이슈는 뒤로 밀려났다. 고도성장을 이루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두말할 나위 없이 수출 증진이었고, 그 수단은 수출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대기업을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었다. 고물가 행진과 내수 침체 우려가 높아지는데도 정부가 집요하게 고환율정책을 추구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정부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적하(滴下)효과’로 번역되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이다. 대기업이나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물방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 경기 전체가 부양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국외에서 부품이나 완제품을 조달하는 글로벌 아웃소싱이 확산되고,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연계가 취약한 우리 경제에서 이 이론이 작동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듣지 않았다. 클린턴에게 패한 부시 대통령이 사용한 경제정책이 바로 트리클 다운이라는 사실도 아이러니다. 클린턴은 집권하자마자 이 정책을 폐기처분했다.

이미 대통령 임기가 종반으로 치닫는 지금 이 정책이 먹혀들고 있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대기업 매출과 자산은 최근 3년간 급증했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지난해 6.2%에 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정부는 자랑한다. 하지만 고용 회복은 미지근한데다 청년 실업은 더 악화됐고, 물가고에다 양극화는 한층 심해지고 있다.

최근 정권 핵심부에서 ‘재벌에 섭섭하다, 배신감을 느낀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다. 출자총액 제한 해제 등 해묵은 ‘민원’을 들어주고 고환율로 밀어줬는데 대기업이 투자와 고용에 소극적이라는 것. 대기업에 대한 실망감의 진솔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었던 트리클 다운이 작동되지 않는 데 따른 정권 핵심부의 낭패감과 당혹감도 작용한 듯하다.

양적 지표인 성장률 높이기에 집착해 중소기업과 창업 지원 등 고용을 적극 이끌어 낼 수 있는 미시적 산업정책을 소홀히 한 것이 현 정부의 최대 패착으로 보인다. 밖으로는 세계를 상대로 무한 경쟁에 노출돼 있고 안으로는 경영권 대물림에 혈안이 된 대기업에 ‘호의’를 베풀면 ‘투자 협조’를 받을 거라 생각한 것도 순진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경영학에서는 구성원들의 열정을 한 방향으로 결집시키는 최상위 목표인 기업 모토(motto)보다 중요한 것으로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중간 목표를 꼽는다. ‘문제는 경제’라는 모토는 옳았지만 중간 목표로 성장률을 내세운 것은 틀렸다. 이제라도 서민들의 체감경기를 더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고용을 목표로 삼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문제는 성장률이 아니고, 일자리다.

배병우 경제부장 bwba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