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장현승] 스승 된 도토리 기사의 사진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제발 죽지만 말아다오!” 말라죽어 가는 사과나무들을 바라보며 속수무책인 농장주인 기무라 아키노리. 그는 비통한 표정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이어가지 못한 채 해 저문 농원을 떠날 줄 모른다.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을 읽은 후 그 감동으로 사과를 자연농법으로 재배하겠다는 신념과 끈기로 지난 5년 동안 꿋꿋하게 천연퇴비만을 사용하고 해충을 직접 손으로 잡으며 사과 하나하나 봉투를 씌워 주면서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확량 감소, 말라죽어 가는 사과나무, 눈덩이처럼 빚은 늘어가고, 아! 이젠 끝이로구나∼.

인식의 변화는 기적의 시작

결국 자살을 결심하고 산에 올라 목을 매려는 순간 그동안 무심코 봐오던 도토리나무에 가득 달린 도토리가 새롭게 보인다. 숲 속에는 벌레도 잡초도 많은데, 농약도 없이 이렇게 잘 자라는 이유가 뭘까? 무엇 때문일까?

새로운 인식의 변화는 시작되고 죽으려는 결심도 바뀐다. ‘원인은 흙’, 자연의 흙은 농장의 흙과 다르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기존 재배 방식을 뒤엎는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최대한 가꾸지 말고 방치하자.’ 그동안 사용하던 농약, 화학비료는 물론 천연비료, 농기계조차 일체 금지했다. 먹이사슬의 치열한 줄다리기 선수들인 잡초 해충 들쥐 토끼 등은 이런 변화를 환영했다. 기무라씨가 한 일은 병에 걸릴 경우 물과 식초를 공급해주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눈 것이다.

그로부터 4년 후 일본 전역을 발칵 뒤집은 ‘썩지 않는 사과’가 탄생한다. 온라인 판매 3분 만에 품절. 농약에 의존하지 않고는 재배자체가 불가능한 농장의 현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스기야마 교수는 원시림에서나 볼 수 있는 유익한 미생물들이 활발히 생존하는 기무라씨의 사과농원이야말로 철저하게 자연 그대로 관리되고 있다고 말한다.

자기방어시스템은 희망이다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치명적 한계, 모든 적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식물들의 처절한 생존경쟁, 그러나 그들에게도 자기방어 시스템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옥수수, 갑자기 애벌레가 나타나 잎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적이다.” 그러자 비상이 걸리고 뿌리와 가지들은 화학성분을 만들어 잎사귀를 통해 방출한다. 애벌레의 천적인 말벌이 가장 좋아하는 냄새다. 어느새 말벌들이 나타나 애벌레를 잡아먹는다. 적을 퇴치하는 자기방어 능력이 참으로 뛰어나다.

원시림과 흡사한 토양에서 자란 기무라씨의 사과나무는 이처럼 잃었던 자기방어 시스템을 회복했고, 썩지 않는 사과를 탄생시킨 것이다. 반면에 애벌레를 잡기 위해 농약을 살포하면 여지없이 자기방어시스템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할 것이다. 애벌레가 아닌 농약 독성에 대처하기 위해 자기방어시스템 체계가 바뀌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유전자 변형이 올 것이다. 오염된 종자들은 자기방어시스템을 더 이상 작동시키지 못하고, 농약에만 의존하는 변형된 씨앗으로 유전될 것이다.

우리는 주목한다. 기무라씨의 신념과 끈기를.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말라죽어 가던 사과나무의 자기방어시스템의 회복이다.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 탄생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는 사과나무의 기적이 우리 자신들의 자기방어시스템의 회복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기방어 시스템의 회복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또 다른 이름의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 사람처럼 죽으며 …”(시 82:6-7). 이 성경 말씀이 자기방어시스템이 망가지면 신들조차 사람처럼 죽어간다는 의미로 들리는 것은 우리 또한 자기방어시스템의 회복을 구하는 간절함 때문이 아닐까.

장현승 과천소망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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