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北 진정성 있는 행동해야 긴장완화… 아니면 대가 치를 것” 기사의 사진

부임 3년 앞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美대사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는 우리 국민에게는 역대 어느 미 대사보다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늘 밝고 온화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모습, 약간의 어색함이 남아 있지만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국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층을 넘나들며 접하고 있는 다양한 한국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스티븐스 대사는 지금껏 정치적인 역할의 비중이 컸던 주한 미 대사의 이미지에 ‘친근한 좋은 이웃’이라는 인상을 더해가고 있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민들과 만남은 한국 정치를 이해하고 한국 경제의 움직임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소통의 통로”라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를 지난 12일 주한 미 대사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대사관은 보안검사가 철저하다.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테러 위협 때문에 긴장도가 조금 더 높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대사의 집무실은 평온해보였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과 미국 양쪽 모두에서 한·미관계가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기에 대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민들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따뜻하고 열린 마음이 감사하다고 전했다.

-주한 미 대사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인가.

“북한 문제다. 북한과 관련된 사안은 솔직히 말해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진전은 없었다. 북한이 이제껏 걸어온 길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바람직한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그간 북한에 분명하게 제시했지만 북한은 외면하고 있다. 잘못된 길에는 대가가 따를 것이다. 북한은 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에서 약속한 원칙을 이행해야 한다.”

-북한은 최근 잇따라 유화적인 발언들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판단하나.

“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행동이다. 북한이 진정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긴장완화를 원한다면 진정성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일관되게 원칙 있는 대응을 해 온 것은 신중하고 적절한 방식이었다. 북한이 좀 더 건설적인 길로 들어서고 한반도가 보다 안정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일관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남북관계를 평가한다면.

“남북 간의 대화는 중요하다. 특히 북한의 도발이 잦았던 지난해의 경우를 비춰보면 남북한의 화해와 대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남북 간 분위기를 어떻게 끌어가느냐는 북한에 달려 있고 북한의 책임이 크다.”

-전시작전통제권이 2015년 한국군에 이전되면 유사시 한국에 대한 미군 증원 등 미국의 지원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렇지 않다. 전작권 전환은 한·미 간 한반도 방어를 위한 보다 효율적이고 강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천안함 피격, 연평도 도발 이후 한·미가 북한의 국지도발에 공동 대응키로 하는 등의 노력에서 보듯 양국은 한반도 방어를 위한 보다 체계적이고 치밀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북한 핵에 대응하는 미국의 핵 확장 억지 약속도 양국이 함께 참여하는 확장억제위원회를 통해 협력과 조율이 이뤄지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분쟁 발발 억제를 위한 미국의 공약은 확고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국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양국 모두에 혜택을 주는 윈-윈(win-win) 협정이다. 한국인은 훌륭한 지성을 갖추고 있으며 또 그간 균형 잡힌 판단을 해왔다. 앞으로 수주 또는 수개월 내 충분한 토론을 거쳐 좋은 결론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

-올 초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서 대사가 우리나라 외교관들과 나눈 이야기가 담긴 외교전문을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곤란한 입장에 처하지는 않았나.

“한국의 외교관들과 마찬가지로 미 외교관들도 주재하고 있는 나라의 주요 인사나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한다. 이는 마치 언론인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정보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다른 사람들과 기밀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 사적인 견해를 나누는 것은 그 사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현지 외교관들이 알게 된 사안을 본국 정부에 보고하고 공유하는 것 또한 외교관의 중요한 임무이며 이런 점은 한국 외교관들도 이해할 것으로 본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몇몇 나라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지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위키리크스가 훔쳐서 공개한 내용들 가운데 사실이 아닌 것들도 있다.”

-첫 여성 주한 미 대사로 많은 관심을 받았을 텐데.

“지금은 여성외교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이라는 사실로 큰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여성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나의 존재가 큰 격려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감동을 받았다. 특히 딸의 결정을 존중하고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많은 아버지를 만난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 음악회에서 한 신사가 다가와 ‘딸이 나와 같은 외교관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좋은 역할모델을 해주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실 스티븐스 대사에게 ‘여성 최초’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1970년 초반만 해도 미국에서도 여성 외교관은 소수였고 결혼하면 그만둬야 했다. 그만큼 보수적이었다.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하던 75년 외교관 시험을 보고 78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스티븐스 대사가 워싱턴과 중국, 한국, 북아일랜드에서 맡았던 직책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 외교관으로서 최초로 수행한 것들이었다. 80년 중국 광저우에 문을 연 영사관에 파견된 최초의 여성 외교관이었고, 83년 주한 미국 대사관 정치과에 근무한 첫 여성 외교관이기도 하다.

-다양한 한국인들과 만나고 있는데 자전거 여행을 함께한 대학생들이 퍽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전거 마니아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타기를 좋아했다. 워싱턴 국무부에서 일할 때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고 한국에 와서는 주말에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있다. 지난해 8월 29일 ‘심은경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를 갖기도 했다. 한국 전역에서 자원한 대학생들과 함께 한국사의 중요한 이정표인 낙동강 방위선을 둘러봤다. 우리는 비를 맞기도 했고 험한 지형을 함께 달리기도 했다. 한국역사에 대해 토의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전거여행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됐다. 지난해 말 우리는 다시 모였다. 당시 여행을 회고하며 우리는 동지애를 느꼈다. 5월 말에는 서해안 자전거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가 대학생들과 자전거여행을 했던 것은 한국 젊은이들이 주한 미 대사라는 고위직에 가질 수 있는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다. 함께 어려움을 경험하고 나누는 이런 방식은 한국 정치과 경제, 사회를 알아가는 더 깊은 길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는 그는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지방 곳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한국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한다. 그를 자주 접한 김관진 국방장관은 “한국을 참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드럽고 친근한 대사’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 반면 정치·외교적으로 무게감 있는 발언은 적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외교관으로서 당연히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20여년 만에 한국에 다시 부임하게 됐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 여정이 어떤 결실을 맺고 있는지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특히 나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여정을 직접 지켜봤다. 75년부터 77년까지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했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84년부터 89년까지는 주한 미 대사관 정무팀장과 부산 미국 영사관 선임영사로 근무했다. 현재 한국은 성숙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 와있다. 중요한 시기마다 한국에서 근무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올해 9월이 되면 부임 3년이 된다. 통상 주한 미 대사들의 근무기간을 감안하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어떤 대사로 기억되고 싶나.

“나는 아직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웃음) 여전히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바쁜 일정으로 그간의 활동을 차분히 돌아볼 시간이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21세기 들어 새로운 한·미 관계를 구축해가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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