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71) 도끼자루가 썩더라도 기사의 사진

유명 소장가가 작품 몇 점을 건네주고 대신 장기 놀이하는 그림을 그려 달라 했다. 부탁을 받은 화가 조영석은 왕희지가 거위 한 마리를 얻은 대가로 경서를 써준 일이 생각나 즐거이 이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 사연이 그림 속에 적혀있다. 밑지는 거래를 자청한 소장가도 그림을 본 뒤 무릎을 친 명품 풍속화다.

여섯 인물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장기판에 빠져들었다. 댕기머리 총각을 제하면 다들 선비 차림이다. 잘 보면 적수가 누군지 안다. 쪼그린 채 갓끈을 만지작거리는 양반이 말을 옮기며 쾌재를 부른다. 한두 수 만에 곧 장을 부를 참이다. 맞은편 두건을 쓰고 팔을 지그시 누르는 노인, 꼼짝없이 당한 수에 난감한 표정이다. 탕건을 쓴 곁사람은 수염을 배배 꼬면서 끝장내는 묘수에 탄성을 지른다.

지나가던 총각이 어깨너머로 훈수를 둬보지만 승세는 이미 기울었다. 들린 코가 익살스럽게 생긴 갓쟁이는 아쉽게 끝난 판을 복기하려는 듯 고개를 잔뜩 숙였다. 이 장기판 물리고 나면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날까. 글쎄다. 사방건을 쓰고 등을 보이는 선비 옆에 쌍육과 바둑판이 놓여있다. 이 양반들 오늘 쌍육에다 바둑까지 해거름이 다 되도록 놀자 판을 벌일 심산이다.

선비라서 체통만 지키란 법 없다. 글 읽기가 지겨우면 왁자지껄 장기 둘 수도 있다. 공자마저 편든다. ‘배불리 먹고 종일 마음 쓰는 데가 없다면 딱하다. 바둑과 장기라도 두는 게 오히려 현명하다.’ 장기는 원래 전쟁을 본뜬 포성 없는 각축이다. 그것을 신선놀음으로 바꾼 선조의 유희정신이 놀랍다. 어떤 놀이든 쌈박질보다는 낫다. 한 수 물리려다 주먹다짐하는 것 빼고 말이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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