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혁신도시 소동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기사의 사진

“다른 곳에서 공공기관 이전이나 공사에 차질이 빚어지면 또 어떤 요구가 나올지”

2009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통합해 공식 출범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자산 규모 130조원으로 국내 공기업 중 덩치가 가장 크다. 그러나 재무구조는 허약하기 짝이 없다. 2010년 말 기준 빚이 125조원, 그중 금융부채의 하루 이자만 100억원에 이른다. 출범 첫해 1조8000억원의 경상이익을 냈지만 금융부채 이자를 채우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LH는 통합 이후 빚을 줄이기 위해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 등 혹독한 구조조정을 계속하고 있으나 내부 불만도 적지 않다고 들린다. 왜 부실 책임을 모두 LH에 떠넘기느냐는 항변이다. LH는 공기업으로서 경제성이 의심되는 정책사업까지 떠안아야 했다. LH 금융부채는 대부분 임대주택 건설(28조8000억원)과 신도시 개발(14조7000억원), 세종시·혁신도시 건설(8조원) 등 정책사업을 추진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임대주택 건설이나 신도시 개발은 어차피 국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수행해야 할 사업이나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은 다분히 정치적 계산에 따른 선심성 사업이라는 이유에서 초기 추진 단계부터 논란이 컸다. 게다가 통합 전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경영진들은 과다한 비용과 불투명한 사업성을 걱정하기보다 먼저 외형을 키워야 한다는 욕심으로 회사를 방만하게 이끌어 부채를 키웠다.

경남 진주와 전북 전주혁신도시는 이런 부실덩어리 공기업이라도 서로 끌어가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정치인들의 선동으로 지역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려 민심은 더욱 달아올랐다. 정부가 지난 16일 LH 본사를 진주혁신도시로 일괄 이전하겠다고 발표하자 김완주 전북도지사와 민주당 전북지역 의원들이 삭발과 단식 등으로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어렵게 통합한 공사를 토지 부문과 주택 부문으로 다시 나누어 분산 배치한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는 요구이지만 그 바탕에는 유치 경쟁에서 탈락하면 해당 지역의 혁신도시가 껍데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절박한 우려가 깔려 있다.

지난 정부에서 지역별 11개 혁신도시를 선정해 150여개 공공기관을 선심 쓰듯 나눠주는 방식으로 배정한 탓에 이들은 인구 유치와 규모, 효율성, 인근 지역과의 연계성 등에서 적지 않은 허점을 안게 됐다. 정부 방침에 따라 터를 잡기는 했으나 경제활동과 거주, 생활, 교통 등에서 도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로 남게 된 것이다.

정부 부처들이 옮겨가기로 예정된 세종시가 기업들의 외면을 받아 자족도시 건설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을 보면 혁신도시의 앞날은 공공기관 이전이 계획대로 실행된다 해도 결코 낙관할 수 없다. 인근 오송 생명과학단지 역시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6개 국책기관이 들어와 있지만 직원 상당수가 이사 대신 수도권에서 오송까지 고된 출퇴근을 택해 반쪽 도시로 전락했다고 한다.

공공기관 이전에 따라 막상 가족과 함께 혁신도시로 옮겨올 직원이 얼마나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지역에 따라서는 혁신도시 건설 이후 인근 도시의 인구가 줄어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거꾸로 상주 인구가 적어 낮에는 제법 붐비지만 밤에는 인적이 드문 유령 혁신도시가 될 우려도 있다.

정부는 LH 유치에서 탈락한 전북을 달래기 위해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전주혁신도시에 배치키로 했다. LH와 국민연금공단에서 나오는 지방세수 차이는 정부 차원에서 보전해 준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 공공기관 이전이나 인구 유치에 차질이 빚어지면 또 어떤 요구가 튀어나올지 걱정이다.

모든 부담은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도시 건설과 세수 보전, 시설유지 등에 필요한 돈을 모두 물어야 하고 공공기관 분산에 따르는 불편과 비효율까지 겪게 됐다. 지역 균형개발로 포장한 정치적 포퓰리즘의 후유증이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소동은 이제 시작일 뿐인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현지 실정에 맞게 사업 규모와 일정을 조정하는 게 그나마 부작용을 줄이는 길이다.

김성기 편집인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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