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종현] 깨진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 기사의 사진

5월 가정의 달이 되면 가슴 아픈 사람들이 있다. 아빠엄마의 손을 잡고 나들이하는 친구들이 부러운 아이들, 어버이날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 다는 것이 소원인 어르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눈물짓는 홀로 남은 사람 등등.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슴에 간직한 채 숨죽이고 흐느낀다. 교회에서 행복한 가정에 대하여 설교할 때, 이들은 구석진 곳에서 홀로 서늘한 가슴을 달랜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족장(族長)들의 가정은 어쩌면 하나같이 그렇게 깨진 가정인지 모르겠다. 남편 하나 믿고 타향살이하는데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남의 나라 왕에게 빼앗길 뻔했던 아브라함이나, 성격이 맞지 않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삭과 리브가 부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야곱의 가정은 그야말로 결손가정의 전형이다. 야곱은 어머니와 공모하여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타향으로 도망하였다. 야곱의 네 아내들이 서로 투기하더니, 열 두 이복형제들은 서로 반목하며 다투는 관계가 되었다. 얼굴이 못 생겼다는 이유로 사랑을 받지 못하던 레아나 자녀를 낳지 못해서 불행하였던 라헬이 품었던 한(恨)은 경중을 따지기 어렵다. 이들의 투기가 자식들에게 전달이 되어, 열 아들이 어린 동생 요셉을 이집트의 노예로 팔아넘기는 데 이르렀다.

불행의 원인은 인간 내부에

족장들의 가정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는 불가항력적인 환경적 요인도 있었을 것이다. 야곱이 쌍둥이의 동생으로 태어난 것이나, 레아의 외모가 부족한 것, 라헬이 오랫동안 아기를 낳지 못한 것들이 그것이다. 둘째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타인(주로 가족 구성원)의 잘못 때문이다. 야곱의 부모는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야곱은 아내와 자식들을 공평하게 사랑해 주지 않았으며, 아내들의 투기를 자식 대에까지 물려주었다. 세 번째의 원인은 자기 자신의 죄악이다. 아버지와 형을 속인 야곱의 욕심, 라헬과 레아의 투기,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동생 앞에서 양고기를 뜯던 요셉의 형들의 무자비함은 결코 작은 죄가 아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들이 서로 얽혀서 가족 구성원의 삶이 망가지고, 자식 대까지 그 삶을 물려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경제가 성장하여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 나아질까? 요즈음 어린아이들을 보면 과거의 어린이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마음껏 나래를 펴며 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겉보기만 그런 것일 뿐이다. 불행의 원인은 사람들의 관계와 인간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외적인 환경이 조금 변화되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성격을 바꾸면 될까? 물론 사람의 성격이 매우 중요하다. 선천적으로 욕심이 많고 탐이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불행한 삶을 산다. 그러나 갈등의 원인이 너무나 복합적이고, 오래 되었고,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성격개조를 통하여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용서는 묶인 매듭을 푼다

이 가정의 한과 저주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관계를 열어준 사람은 야곱의 아들 요셉이다. 조상들의 모든 죄악의 결과를 뒤집어 쓴 사람이었다. 할아버지 이삭의 영적인 어두움, 아버지 야곱의 욕심과 편견, 어머니와 큰어머니의 투기, 형들의 시기와 질투가 그를 이방 땅에 노예로 팔았다. 모든 고통과 수치와 슬픔을 한 몸에 짊어졌다. 요셉은 여러 해 동안 내려오던 죄의 사슬을 끊고, 자기에게 메워진 십자가를 묵묵히 견디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을 때, 그는 형들을 용서하였다. 서로 끌어안고 통곡함으로써 극적으로 매듭이 풀리게 되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위로와 만족을 누린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알고 그 도구로 쓰임받기를 기뻐한 한 사람의 헌신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는 법이다.

장종현 목사 (백석학원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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