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완투패도 아름답다 기사의 사진

투구 수 이제 100개를 넘겼습니다. 투수 교체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말을 야구 중계에서 자주 듣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현대 야구이고 과학적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투구 수를 조절해야 한다, 혹은 투수를 혹사시키면 안 된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지요.

그런데 뭔가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 최동원 투수는 나왔다 하면 거의 완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간에 난타를 당해도 끝까지 갔다는 거지요. 최동원이 나오면 게임이 꽉 찬 느낌이 들었고 드라마가 시작된 기분이었습니다. 완투패를 해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한계 투구 수라는 말이 등장하더니 투수의 분업이 세분화되었습니다. 선발투수는 6회까지 던지고 필승조와 패전처리조가 상황에 따라 등장합니다. 마무리 전에 셋업맨도 등장하고 홀드도 있습니다.

이런 세분화를 통해 팀은 승리를 많이 거둘 수 있습니다. 선동열 감독시대의 삼성이 그랬고 김성근 감독의 SK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적은 좋지만 진한 감동이 없고 게임이 무미건조한 느낌이 듭니다. 선발투수가 완투하는 것을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투구 수를 조절해주면 선발투수의 수명이 늘어나고 성적도 더 좋아지나요? 용불용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면 쓸수록 기능이 좋아지고 쓰지 않으면 기능이 상실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이 투수에게도 해당된다고 여깁니다. 지금처럼 선발투수를 보호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투수의 수명이 짧고 성적도 나빴을까요?

일본 프로야구에 이나오 가즈히사라 는 투수가 있었습니다. 1956년에서 69년까지 활약했으니 꽤 옛날 투수군요. 통산 276승 137패를 기록했습니다. 완투는 179번이나 됩니다. 승패를 기록한 게임 중 약 43%를 완투했다는 겁니다. 요즘 한국의 에이스 류현진은 어떨까요? 81승 41패에 완투 경기는 25번으로 약 20%입니다. 이나오의 14시즌 통산 방어율이 1.98입니다. 류현진은 2.82인데 아직 진행 중입니다. 이나오는 1958년 일본시리즈에서 1, 3, 4, 5, 6, 7차전에 모두 등판해 시리즈 우승을 이끕니다. 다음 해에도 시즌 30승, 1961년에는 42승을 기록합니다.

투구 수를 조절하여 투수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껏 던지게 한 것이 기적을 만들었겠지요. 투구 수 조절이 아니라 투구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좋은 폼으로 던진다면 얼마든지 던질 수 있다는 거지요. 선발투수가 완투하는 모습이 많을수록 감동을 주는 드라마를 맛볼 수 있을 겁니다. 완투패도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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