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엄상익] 변호사 저널리즘 기사의 사진

“변호사가 불공정사회의 주범으로 몰매 맞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변호사 업무를 하다 보면 타인의 비밀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권력과 돈의 조직적인 유착을 보기도 했다. 서민을 울리는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을 보니까 몇 년 전 경험이 떠오른다.

저축은행을 다른 사람 명의로 헐값에 사들인 인물이 있었다. 은행돈을 개인금고같이 주가조작에 퍼부었다. 절대 발각될 리가 없었다. 그는 돈으로 권력의 곳곳을 썩어 문드러지게 했기 때문이다. 정말 정교한 뇌물제공 방법들이 난무했다. 권력자의 부동산을 비싸게 사주는 방법도 있었다.

법은 거미줄 같다. 작은 벌레만 잡힌다. 거물인 그가 걸릴 리가 없다. 잡혀도 바지사장을 대신 보낸다. 힘 있는 사람들은 저축은행이 위험할 때면 언제든지 치고 빠질 수 있었다. 결국 저축은행이 파산하면 선량한 사람들의 피와 땀인 예금들은 야합한 사기꾼과 권력가의 제물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법정에서 그걸 말하기는 공허했다. 법조 선배인 한승헌 변호사는 후배들에게 글을 쓰라고 했다. 기록이 없으면 사실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독재정권 시절 ‘정치재판의 현장’ ‘위장시대의 증언’ 같은 책을 써서 불의와 차별에 저항했다.

그 대가로 감옥에 간 첫날의 씁쓸한 얘기는 내 일같이 가슴에 와 닿았다. 죄수복으로 갈아입는 순간 구치소는 평소 변호사로서 들락거리던 업무장소가 아니더라고 했다. 플라스틱 식기와 젓가락을 받아들고 감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철커덩’ 하고 뒤에서 문이 닫히는 금속성 소리가 그렇게 가슴에 충격을 줄 줄 몰랐다고 했다.

고 조영래 변호사는 청계천에서 분신을 한 전태일 평전을 써서 세상에 차별과 불의를 알렸다. 그런 일도 변호사의 사회정의 임무다. 변호사회관에 들어서면 벽에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쓴다’라는 글이 붙어 있다.

나도 선배 변호사들을 따라 글을 쓰기로 했다. 저축은행을 가지고 장난하던 기업 사냥꾼을 글로 고발하려고 할 때였다. 나는 그의 비리를 시사잡지에 고발하고 소설로도 형상화했다. 사기꾼 회장은 나의 삶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충분히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사기관 고위직의 동생과 친인척을 비서와 사원으로 고용해 어떤 조사도 왜곡시킬 능력이 있었다. 조직폭력배 조직도 다른 한쪽에 가지고 있었다. 최고 권력 주변과도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다.

그는 나를 피의자로 만들어 경찰서 철 의자에 앉혔다. 담당 형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눈감고 살면 될 텐데 왜 평지풍파를 일으키느냐는 표정이었다. 정치를 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아니면 좌익이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재벌 회장님을 공격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럴 것 같다고 했다. 설사 불의라도 업무상 비밀인데 변호사는 입을 닫아야 하는 게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거액의 민사소송도 당했다. 나를 거지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의도 같았다. 몇 년을 죽도록 고생하다가 용감한 대법관 덕에 간신히 살아났다.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 봤다. 특별히 정의라는 거창한 관념에서 그런 건 아니었다. 진실을 알다보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쪽을 선택했을 뿐이다. 한승헌 변호사도 그랬었다고 했다.

인생은 순간순간이 선택이다. 나 같은 변호사는 극소수의 이단이다. 변호사도 여러 갈래다. 강봉수 변호사 같은 분은 20여년 전부터 버려진 아이들 수십 명을 데려다 남몰래 먹이고 키웠다고 한다. 그의 선행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오윤덕 변호사 같은 이는 쪽방동네에서 사랑샘을 운영하면서 좌절하는 수많은 청년들의 영혼을 구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대학과 종교단체에 평생 번 돈을 기부했다. 박원순 변호사같이 시민운동에 일생을 건 사람도 있다.

변호사마다 인생관에 따라 가는 길이 다르다. 수도승 같은 고행의 길을 가는 분도 있고 세상에서 욕하듯 악덕 변호사, 전관예우 변호사도 있다. 변호사가 불공정사회를 만드는 주범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 요즈음이다. 답답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변명을 한번 해 봤다.

엄상익 변호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