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72) 수탉과 암탉이 울면 기사의 사진

몸피 좋은 닭이 날벌레를 입에 물었다. 꽁지가 나우 올라가도 볏이 낮고 시울이 민춤한 걸 보면 수탉 아닌 암탉이다. 어미가 나눠줄 모이를 쳐다보는 병아리들의 눈망울이 또랑또랑하다. 웬일일까, 한 놈은 먹이가 귀찮은지 비켜섰는데, 눈이 희멀겋다. 아하, 이 놈 볕이 따스해 깜박 졸고 있구나. 정답고 살가운 시골 닭들의 오찬 모임이다.

닭은 맨드라미와 함께 옛 그림에 자주 나온다. 닭에 볏이 있고 맨드라미도 닭 볏을 닮아 둘 다 그리면 벼슬하고 또 벼슬하라는 기원이 된다. 장닭이 기운차게 우는 그림은 흔히 ‘공명(功名)’과 통한다. ‘장닭(公鷄)이 운다(鳴)’는 말에서 한문을 바꿔 ‘공을 세운 이름’으로 만들었다. 이 그림은 그런 덕담과 상관없이 따스한 모정과 도타운 가족애를 그렸다.

닭과 병아리의 모습이 매우 또렷해 그림에 실감이 넘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린 이가 18세기 화원 변상벽이다. 당대의 국수(國手)로 일컬어진 그는 특히 고양이 그림에서 조선 제일로 꼽힌다. 별명이 ‘변 고양이’였다. 임금의 초상을 맡았던 솜씨니 묘사력이야 물을 것도 없겠다. 자잘한 디테일마저 안 놓친다. 그림 속에 병아리는 일곱 마리다. 암탉 가랑이 사이로 발 네 개가 숨었다.

닭은 다섯 가지 덕이 더 있다. 볏은 문인의 벼슬이라 문(文), 발톱은 날카로워 무(武), 싸움을 잘해서 용(勇), 모이를 나눠 먹어서 인(仁), 새벽 오면 울어서 신(信)이다. 이쯤 되면 백숙 먹기가 미안할 지경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게 아니라 알을 낳는다. 그럼 수탉은? 당나라 시인 이하가 시원스레 답한다. ‘수탉 한번 울음에 천하가 밝는구나.’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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