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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김용백] 세기의 ‘막장’ 드라마

[데스크시각-김용백] 세기의 ‘막장’ 드라마 기사의 사진

온갖 악평에도 한국의 ‘막장’ TV드라마는 뜬다. 선량한 사람들과 돼 먹지 않은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끝 간 데 없을 듯이 가해와 피해를 반복한다. 결말은 뻔하다. 용서와 화해이다.

지난 15일 발생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성폭행 미수사건은 막장 드라마의 소재와 구성을 갖는다. 2002년 성폭행 미수, 2008년 불륜 등 난잡한 62세의 스트로스칸보다도 동갑내기 부인 안 싱클레르가 스토리를 이끌면서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스트로스칸의 세 번째 부인인 그녀는 재력 있는 유명 TV진행자 출신이다.

스트로스칸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랑스의 산업장관, 재무장관에 이어 2007년부터 IMF 총재를 맡아 일했다. 그는 프랑스 사회당의 차기 대권 유력 후보로서 지지율이 자그마치 40%대나 된다. 능력과 명망을 갖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지만 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불릴 만큼 약점도 있다. 그가 미국 뉴욕 한복판에 있는 호텔에서, 그것도 대낮에 호텔 객실청소원인 32세 흑인여성을 성폭행하려다가 실패한 건 그의 여성편력사상 최대 낭패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남성 중심적 풍조가 여전하다는 프랑스와 자국민의 인권문제라면 잠자코 있지 못하는 미국이다. 선악의 진영은 가해자 쪽과 피해자 쪽으로 나눌 수 있다. 스트로스칸과 싱클레르, 형사사건 전문의 최정예 변호인팀, 프랑스 정부, 프랑스 국민, IMF 등이 가해자 군(群)이다. 피해여성, 미국 정부, 미국 검찰과 법원, 미국 국민 등이 피해자 군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여러 역할을 하면서 세기의 법정 드라마를 수개월간 진행시킬 것으로 보인다.

스트로스칸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전자발찌를 차고 연금 상태에서 24시간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 피해여성도 세간의 관심과 추가적 가해의 두려움에 떨면서 집안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고 한다. 가해자 쪽 수장은 돈을 대고 발품 파는 싱클레르이다. 사건 발생 때부터 그녀는 남편의 결백을 믿는다고 단호히 밝혔다. 그리고 약 65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남편을 교도소에서 빼냈다.

놀라운 건 싱클레르가 피해여성의 잘못을 들춰내기 위해 사설 수사팀을 꾸렸다는 사실이다. 수사팀은 피해여성의 현 주소지 주변은 물론 고향인 아프리카 기니까지 날아가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과거 수사당국에 체포된 경력, 약물 중독 및 음주 이력, 송사(訟事) 등을 수집하고 있다. 특히 돈 받고 성관계를 한 적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게 핵심이다. 변호인팀은 이런 사실들을 교묘히 짜깁기해서 사건의 흐름을 단번에 뒤집을 태세다. 변호인 벤저민 브라프만은 “내가 조사한 바로는 스트로스칸 총재는 무죄로 풀려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프랑스 내무부장관은 스트로스칸이 형을 받고 수형지를 프랑스로 변경하길 원한다면 귀국을 돕겠다는 운을 미리 떼놨다. IMF는 무죄추정(無罪推定)의 원칙에 입각해 어떤 공식적 입장을 갖지 않는다고 연막을 쳤다. 차기 IMF 총재 후보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이 유력해 첫 여성 총재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시기적으로도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은 프랑스 출신 총재를 선호하면서 프랑스의 입장을 거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쯤 되면 스트로스칸의 7가지 성범죄 혐의가 사실로 확정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세계적 명망과 권력을 쥔 노부부가 나약한 흑인여성 한 명을 상대하기란 아주 쉬운 일일 수 있다. 재판은 지루하게 진행될 것이고, 국익과 외교적 문제를 의식한 미국이 어물쩍 발을 뺄 경우 결말은 쉬워진다. ‘가장 좋은’ 결말은 쌍방과실(雙方過失). 서로 부주의했음을 인정하고 적당한 보상과 함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유전무죄(有錢無罪)’의 막장 드라마 한 편은 완성된다. 하나의 변수가 있을 법하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성들이 얼마만큼 물고 늘어지느냐이다. 기대할 수 있을까?

김용백 국제부장 yb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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