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조성기]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기사의 사진

2주 전쯤 어느 신문의 전면광고를 보고 약간의 놀람과 함께 “이런 사람들이 아직도 있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패밀리 라디오라는 선교단체에서 낸 광고였다. 2011년 5월 21일 예수가 재림하고 2억명의 성도들이 휴거돼 공중으로 들려 올려진다는 내용이었다. 나머지 인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6시 뉴질랜드에서 전무후무한 재난이 일어난다는 예언까지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계산이 나왔나 살펴보니 베드로후서 말씀을 인용해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으니 7000년에서 빼고 더하고 어쩌고 하면 그 날짜가 나온다고 했다. 초등학생의 국어 실력으로도 그런 해석과 계산이 나올 수가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엉터리 예언에 넘어가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혹세무민 종말론 경계하고

성경이 잘못 다루어질 때 얼마나 위험한 책이 되는가를 다시금 실감하는 사례였다. 물론 지난 21일 그들의 예언은, 1992년 10월 28일 자정 예수 재림 예언(다미선교회 주장)과 마찬가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선교단체 지도자는 즉시 말을 바꾸어 ‘계산이 잘못돼 다시 계산해 보니 2011년 10월 21일이다’라고 했다. 수십억원의 비용으로 전 세계 신문들에 전면광고를 내는 사람이 여러 번 검산도 해보지 않았단 말인가.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하고 질문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좀 엉뚱한 대답을 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가시적인 공간 개념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말씀이었다. 또한 너희 안에 이미 임하였으므로 더 이상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언제 임한다 식으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었다. 누가복음 11장 20절에도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했다.

그런데 성경학자 간에는 ‘너희 안’에 관한 해석을 두고 견해 차이가 있다. ‘안’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엔토스’인데 대개 세 가지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소박한 해석으로 ‘마음속(in)’이라는 것이다. 내면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속에 임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심령적 하나님 나라이다.

또 하나는 공동체적인 해석으로 ‘가운데(among)’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수 공동체, 즉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 가운데’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 공동체로 인해 그 사회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여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해석은 ‘책임’의 문제와 관련 있다.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은 너희 손에 달려 있다, 즉 너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 바라듯 하나님 나라를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헌신을 통해 이루어 나가야 함을 강조하는 셈이다.

예수 공동체 확장시키자

세 견해가 서로 맞서고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그 견해들 모두 일리가 있다.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해야 공동체와 사회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요 적극적인 헌신 없이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성경 구절들을 억지로 끼어 맞춘 허황된 종말론과 재림론에 현혹되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심화시키고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조성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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