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잘못된 인사의 폐해는… 기사의 사진

진시황제가 아직 천하를 통일하기 전, 그러니까 진나라 왕이었을 때 일이다. 그는 한비(韓非)의 ‘고분(孤憤)’과 ‘오두(五?)’를 읽고 “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며 감탄하기를 마지않았다.

천하의 패자를 매료시킨 그 ‘고분’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무릇 신하의 이익과 군주의 이익은 서로 다르게 마련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군주의 이익은 재능 있는 자를 관직에 임명함에 있고, 신하의 이익은 재능이 없이도 정사의 요직을 얻는 데 있습니다. 둘째, 군주의 이익은 공로가 있는 신하에게 작록을 주는 데 있고, 신하의 이익은 공로 없이 부귀를 얻는 데 있습니다. 셋째, 군주의 이익은 재능 있는 호걸을 유용하게 부리는 데 있고, 신하의 이익은 파당을 결성하여 사욕을 채우는 데 있습니다.”(성동호 역해)

한비자가 ‘孤憤’에서 말하기를

이 정문일침(頂門一鍼)은 2천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매섭기가 추상열일이다. 더 무서운 훈계는 이 글의 말미에 나온다. “신하에게 큰 죄가 있는데도 군주가 이를 금하지 않는 것은 군주의 크나큰 과실인 것입니다. 위에서 군주가 큰 과실을 범하고 아래에서는 신하가 큰 죄를 저지른다면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국가가 군주의 재산이었던 왕조시대의 이야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통령이 잘못된다고 나라가 망할 일은 없다. 그렇지만 인사가 잘못되면 국정이 어지러워지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미친다. 말할 것도 없이 인사권자 자신은 처량하고 가엾은 처지에 놓이고 만다.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금융감독원 검사 무마 청탁과 함께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의 경우는 어떨까? 고위직이 아니어서 ‘대통령의 인사실패’ 예로서는 적절하지 못할까? 게다가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 것도 아니고…. 따라서 ‘인사 탓’을 하기는 아직 이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다. 은행 측은 서민들이 맡긴 피 같은 돈을 임직원의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무한정 퍼주었다가 거의 다 떼였다. 이 때문에 서민들은 목숨 같은 돈을 돌려받을 기약이 없어졌는데 이른바 VIP고객 수십 명은 영업정지 직전에 거액을 인출해 갔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악질적 측면들이다. 사전에 은행 측이 정보를 흘려줬다면 이는 ‘악랄한’ 배임이고 이런 은행을 비호하려 했다면 ‘악랄한’ 범죄다.

국정조사 하려면 제대로 해야

알려진 혐의사실로 미뤄 불법 로비자금을 수수했을 개연성이 부족하지 않다. 국가 최고의 회계검사 및 직무감찰 기관인 감사원의 감사위원은 충분히 높고 중요한 자리다. 그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은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은씨를 임명했다. 은씨가 2007년 대선기간 중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네거티브 대책단 BBK팀 팀장을, 이듬해엔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무행정분과위원회 상임자문위원을 역임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면 이는 측근발탁, 보은인사의 전형이다.

‘은진수 비리사건’은 필경 레임덕의 가속 페달이 되고 말 조짐이다. 잘못된 인사의 호된 대가를 요구하는 청구서가 발급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 수취인은 바로 이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여당인 한나라당이다.

감사위원 한 사람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정실인사는 결국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아야 한다. 이 대통령이 일전 민정수석비서관실에 들러 강한 어조로 신칙했다고 하지만, 비서들의 감시 감독 기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위상 자체가 ‘접근 금지’ 팻말이 되기 때문이다.

<사족>=검찰 수사가 일단락되길 기다려 국회도 본격적인 국정조사에 나서기로 여야가 합의한 모양이다. 조사를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한다. 그간 공공연히 저축은행들을 역성들면서, 부실 또는 비리 여부를 밝혀내고자 하는 감사원이나 금감원을 윽박지른 국회의원들이 있었다고 들려서 하는 말이다. 제발이지 사태의 원인과 함께 악당들을 밝혀내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설령 그 속에 동료의원이 있더라도!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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