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변환철] 초심으로 돌아가길 기사의 사진

“덕행은 언제나 곤궁 속에서 이루어지나 몸을 망치는 것은 뜻을 얻었을 때다”

‘개원(開元)’은 당 현종이 즉위하면서 사용한 연호이다. 여기서 나온 ‘개원의 치(治)’란 말은 현종이 다스린 개원 연간의 치세 또는 그 시기에 이루어진 것과 같은 태평성대를 일컫는다. 현종은 즉위 초 요숭(姚崇), 송경(宋璟) 같은 명신들을 재상으로 기용하고 선정을 폄으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치세를 기록했다.

지극히 백성을 사랑한 현종의 마음은 한휴(韓休)와의 일화가 잘 보여준다. 현종을 보좌한 명신인 한휴는 현종에게 과실이 있으면 서슴없이 직간했다. 그리고 현종은 한휴의 직간을 참으로 무서워했다. 일례로 현종은 자신이 베푼 연회가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면 “한휴가 알면 어쩌지…” 라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종은 한휴로 인해 늘 마음이 편치 못했다.

어느 날 한휴를 시기한 한 신하가 말했다. “한휴가 재상이 된 뒤 폐하가 매우 수척해지셨습니다. 어찌 파면하지 않으십니까?” 현종이 답했다. “한휴 덕분에 나는 야위었으나 천하는 살찌지 않았는가.” 지도자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덕목을 현종은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현종도 오랜 통치가 계속되자 거만해졌다. 현종은 충언하는 명신들을 내치고 간신들을 중용하면서 실정을 거듭하다가 급기야는 강제로 퇴위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백성을 사랑한 초심을 잃은 대가는 이렇게 컸다.

비슷한 예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백제의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으로 인해 백제의 멸망을 자초한 무능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의자왕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재위 20년 중 15년간은 뛰어난 통치력을 발휘한 훌륭한 왕이었다. 의자왕은 즉위 전부터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칭송을 받을 정도로 부모에 대한 효심과 형제애가 두터웠다.

즉위한 후에는 안으로는 인의(仁義)의 정치를 펴서 민생을 잘 돌보고, 밖으로는 신라에 빼앗긴 대야성(합천)을 비롯한 40여 성과 당항성(남양)을 되찾아 백제의 국위를 크게 떨쳤다. 외교적으로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고구려와는 화친하는 정책을 펴고, 신라에는 고립정책과 군사적 압박을 신축성 있게 펴나감으로써 백제 융성의 틀을 다졌다. 의자왕의 초심이 재위 끝까지 이어졌다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자왕은 왕권을 견제하는 귀족세력을 대거 숙청하여 왕권이 절대적으로 강화되자 정치적 긴장에서 해방되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실정을 거듭하였고, 그 결과 급기야 백제의 멸망까지 초래한 왕이 되고 말았다.

저축은행 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이 사태를 초래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데는 여야가 따로 없고 전(前) 정권이나 현 정권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야가 서로 삿대질하면서 상대방의 허물을 들춰내지만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면서 한 푼, 두 푼 피땀으로 가꾸어 온 재산을 모두 잃게 될 위험에 빠진 서민들에게는 그들 모두가 다 한통속으로 보인다.

서민들의 고통을 완화해 줄 적절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으면서, 혹은 못하면서 이전투구에 빠져 있는 이 나라 지도층을 보며 과연 이 나라는, 이 정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에 빠져 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그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공직을 맡거나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직책을 처음 맡았을 그때에는 그들도 ‘국리민복’이라는 말을 가슴속에 새겼을 것이다.

지금의 결과는 그 초심을 잃은 탓일 것이다. 옛말에도 ‘덕행은 언제나 곤궁 속에서 이루어지나 몸을 망치는 것은 대부분 뜻을 얻었을 때다(成德每在困窮, 敗身多因得志)’라고 하였다. 유능했던 어느 감사위원의 구속에서 보듯이 뜻을 이룬 후 초심을 잃으면 그 일신에 화가 닥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마저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들려준다.

부디 모든 공직자,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청렴은 목민관(牧民官)의 본무이며, 모든 선의 근원이고 또한 덕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 수 없다’고 한 다산 선생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변환철 중앙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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