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74) 산수에 인기척이 없다 기사의 사진

깎은 절벽 가운데로 나무 한 그루가 튀어나왔다. 위가 아니라 옆으로 자란 소나무다. 바위와 흙을 그러잡는 뿌리의 힘이 모지락스런 소나무는 사지가 뒤틀려도 문실문실 잘만 큰다. 자란 꼴이 반드럽지 못해도 소나무는 신령하다. 무덤가에 둘러 심은 도래솔은 잡귀를 쫓고, 천년을 산 노송의 수액은 호박(琥珀)이 된다고 옛 사람은 믿었다.

소나무가 이 그림의 주연일까. 낯설고 공칙한 구도 때문에 단박 눈에 들기는 한다. 하여도 외지고 쓸쓸한 산수화를 매우 괴괴하게 만드는 것은 비어있는 집이다. 풀로 엮은 지붕과 나부죽한 기둥으로 겨우 버티는 정자 한 채. 버려져서 헐벗었다. 민둥산 아래 강물이 흐르는데, 정자 안에 사람 기척이라곤 뵈지 않는다. 차려진 그대로의 차림새, 선바람으로 맞는 자연풍광이다. 저 텅 빈 정자에 화가의 심사가 있을 테다.

그린 이는 문인화가이자 비평가인 강세황이다. 태어날 때 신동으로 부러움을 산 그는 자부심이 우뚝했다. 자(字)가 ‘광지(光之)’인데, 글씨의 왕희지, 그림의 고개지, 시의 두목지, 문장의 한퇴지 등의 이름을 본받아 ‘지(之)’라는 돌림자를 넣었다. 일흔이 넘어 쓴 그의 시에 ‘푸르른 소나무는 늙지 않고, 학과 사슴은 나란히 운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고절한 존재가 무릇 그러하리라. 함에도 그가 무인지경의 그림을 그린 까닭은 풀리지 않는다.

강세황은 산수화의 어려움을 털어놓은 바 있다. ‘진경(眞景)은 닮게 그리기 어렵다. 참된 것을 감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참’은 숨겨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인적 없는 산수화가 그래서 심상찮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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