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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전재우] 소셜과 소설

[데스크시각-전재우] 소셜과 소설 기사의 사진

삼인성호(三人成虎).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內儲說)에 나오는 이야기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세 사람만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얘기하면 사실로 믿게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당시 위나라 충신 방총은 혜왕에게 시장의 호랑이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충정을 강조한 후 볼모로 가는 태자를 보필해 조나라로 갔다. 그러나 방총은 예상했던 대로 중상모략에 시달려 왕의 의심을 받게 되고 결국 위나라 땅을 밟지 못했다.

증삼살인(曾參殺人). 공자의 제자이자 효행으로 이름 높은 증자, 곧 증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인을 했다. 사람들은 증자가 살인한 것으로 오해했다. 세 사람이 차례로 증자의 어머니를 찾아가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고 얘기를 하자 어머니는 결국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빅뱅의 대성이 지난달 31일 새벽 교통사고를 냈다. 한 언론사에서 쓴 첫 기사의 제목은 ‘빅뱅 대성 교통사고…오토바이 운전자 사망’이었다. 내용도 잘못됐지만 제목만으로도 대성이 앞서가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운전자가 사망한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사고 소식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퍼져나갔다. 이내 대성이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였다고 받아들여졌다. 기사 중에는 ‘음주운전 조사 중’이었는데 사람들은 ‘음주운전을 했다’고 옮겼다. 조금 후에는 ‘진술서에 맥주 3병을 마셨다고 썼다’로 바뀌었다. 오토바이 운전자에 대한 정보는 없는데 50대 남성이라고 하더니 일용직 노동자로 밝혀졌다로 구체화됐다. ‘소설 집필’이 시작된 것이다.

고백과 반성을 전제로 본보도 첫 기사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속보를 내보냈다. 기사의 일부분은 틀렸다. 당시 당직을 하던 기자는 곧바로 사실 확인을 하고 기사를 수정해 내보냈다. 첫 보도를 한 언론사도 한참 후 기사를 수정했다.

하지만 삼인성호의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소설’을 바로잡아야 할 언론사 중 일부는 소문을 바탕으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사실과 소문이 혼재됐다. 당일 오전이 지나서야 사태는 진정됐다.

초등학교 때 하는 놀이 학습 중 하나가 ‘말 전달하기’다. 이 놀이 학습을 하는 이유는 말하고 듣는 능력을 키우는 동시에 그 중요성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쉬운 것 같으면서 참 어렵다. 아주 간단한 문장인데도 열 명 이상 넘어가면 틀리기 일쑤다. 말을 전달하다 보면 어느새 조사가 빠지고, 단어가 빠지면서 전혀 다른 문장이 돼 버린다.

어린 시절에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중요성을 배웠는데도, 몰라서든 장난이든 요즘엔 너무 쉽게 말과 글을 옮기고, 너무 쉽게 첨삭을 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미니홈피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개인의 공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재오 특임장관도 그랬다. 옛 단상을 적은 트윗 한 줄이 자신의 의도와 다른 해석을 낳자 지난 7일 “트위터 하기가 무섭다”고 글을 올렸다. 이조차도 비판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 소통을 담당하는 특임장관, 4선의 국회의원인 공인이 SNS를 개인적인 공간으로 여기고 있었다면 일반인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으로 대변되는 SNS는 개인의 공간이 아니다. 미니홈피는 일정 부분 사적인 공간을 두고 있지만 SNS는 말 그대로 사회(Social)의 공간이다. 트윗을 올리면(발행하면) 팔로어(구독자)들이 읽는다. SNS든 미니홈피든 공개 글을 쓰게 되면 그 글을 쓴 사람은 발행자(Publisher)가 된다. 글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학생이었던 시절을 다시 회상해보자. ‘말 전달하기’를 하면서 말하기와 듣기의 중요성을 배웠듯 SNS나 미니홈피 등에 글을 올리려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가다듬어 말 그대로 ‘소셜 네트워킹’을 해야 한다. 그것이 온라인 시대, 스마트 시대를 살아가는 네티즌, 트위터러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전재우 디지털뉴스 부장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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