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카폴리 잡아라” 아빠는 지금 전쟁중 기사의 사진

“로보카폴리 품절됐어요. 죄송합니다.”

7일 오후 서울에 있는 이마트 27곳 중 완구매장을 갖춘 24곳에 전화해서 이런 답변을 들었다. 다른 대형마트도, 전문 완구매장도, 학교 앞 문방구도 사정은 비슷했다. 로보카폴리는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난감이다.

네이버의 자동차 동호회 카페에 한 ‘아빠’가 이런 글을 올렸다. “오늘 퇴근 후 동네 마트 세 군데를 돌아다녔습니다. 지난 주말엔 지방도시 마트에도 갔습니다. 로보카폴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변신 안 되는 장난감을 사다줬는데, 네 살 딸이 그걸 변신시키려고 계속 주물럭거립니다.”

EBS는 지난 2월 28일부터 매주 월·화요일 오전 8시20분에 애니메이션 ‘로보카폴리’를 방송하고 있다. 로봇으로 변신하는 자동차구조대를 다루는 만화영화로 주인공 ‘폴리’는 경찰차다. 소방차 ‘로이’, 구급차 ‘앰버’, 정찰 헬리콥터 ‘헬리’도 등장한다. 현재 방송 중인 만화영화 중 가장 시청률이 높다.

육아 커뮤니티 사이트, EBS 시청자 게시판, 완구업체 ‘아카데미과학’ 홈페이지는 “로보카폴리, 어디 가야 살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도배되고 있다. 자녀의 성화에 지친 부모들은 ‘웃돈 거래’를 감행하기도 한다. 정가가 1만3500원인데, 중고품 거래 사이트에선 3만원에도 팔린다.

1996년 ‘솔드아웃(Sold Out·품절)’이란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아들이 애타게 찾는 로봇 장난감이 품절되는 바람에 그걸 구하려고 좌충우돌하는 아빠를 다뤘다. 지금 한국에선 로보카폴리가 ‘솔드아웃’됐다. 도대체 뭐기에.

사람, 동물, 자동차가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마을 ‘브룸스타운’(부릉부릉 하는 마을이라는 뜻)에는 날마다 크고 작은 사고가 난다. 오퍼레이터 ‘진’이 신고전화를 받으면 폴리를 비롯해 변신 자동차 구조대가 즉각 출동한다. 누군가 공사장 시멘트 반죽에 발이 묶이거나, 빗길에 미끄러지거나, 위험에 놓이면 이들이 찾아가 손발이 달린 로봇으로 변신해 구해준다.

이런 스토리로 영유아용 애니메이션 로보카폴리를 만들어낸 것은 창작 애니메이션 업체 ‘로이비쥬얼’이다. 변신 과정은 영화 ‘트랜스포머’를 생각하면 된다. 이 만화영화가 인기를 끌자 변신로봇 장남감을 제작한 건 완구업체 ‘아카데미과학’. 4월 14일 홍콩 완구회사 실버릿과 제휴해 출시했고, 로보카폴리의 어린이 시청자들은 이 소식에 흥분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카데미과학이 1차로 제작한 물량은 20만개. 인기를 감안해 4∼5월 2개월분으로 만든 것인데, 출시하자마자 매진됐다. 김명관(41) 아카데미과학 전무는 “어린이날을 겨냥해 상당히 공격적으로 수량을 정했지만 출시 직후 물량이 동나 버려서 어린이날에는 팔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과학의 협력사인 실버릿이 중국 공장을 3교대로 밤샘 가동해 제품을 찍어냈지만 역부족이었다. 4월 29일 아카데미과학은 급기야 ‘고객 감사 및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생산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향후 생산 일정을 2개월씩 앞당겨 로보카폴리 제작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내용이다.

현재까지 팔린 로보카폴리 장난감은 40만∼50만개. 우리나라에 3∼7세 영·유아는 200만명쯤 된다. 아카데미과학이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았던 제품은 2006년 출시한 인조곤충 버그파이터 로봇이다. 3년간 200만대가 팔렸었는데, 로보카폴리는 이대로라면 이 기록을 1년 안에 깰 수도 있다.

실버릿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실버릿은 한국을 테스트 시장으로 삼아 로보카폴리 반응을 관찰한 뒤 세계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었다. 이 만화영화는 내년부터 세계 100여국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외국 어린이들도 한국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면 물량 공급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왜 이렇게 인기일까. 변신 로봇이라서? 트랜스포머, 파워레인저, 또봇 타이탄 등 이미 변신 로봇은 많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캐릭터팀 이경배(56) 팀장은 애니메이션과 완구의 연동을 꼽았다.

“이 업계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충격적이었어요. 애니메이션과 완구가 거의 동시에 출시된다는 자체가. 지금까지는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상품들이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개발돼 왔거든요. 그런데 로보카폴리는 처음부터 캐릭터 상품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어요. 오래전부터 시장을 읽고 준비한 거죠.”

이동우(38) 로이비쥬얼 대표도 “장난감이 만화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이 구현되도록 하고 싶어서 기획, 디자인 단계마다 장난감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동차에서 팔다리가 쉽게 빠져나와 변신되도록 범퍼가 짧아졌고, 쉽게 팔다리를 집어넣어 자동차가 되도록 차체는 통통해졌다.

로보카폴리 캐릭터는 4년여 작업 끝에 완성됐다. 로이비쥬얼(1998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홍익대 인근 옥탑방에서 시작했다)이 첫 영상을 만들었을 때 아카데미과학(41년간 조립식 장난감을 만들어왔다)과 실버릿(디즈니 완구를 제작해온 글로벌 업체다) 측에서 찾아왔고, 세 회사는 제휴를 맺었다. 실버릿이 로보카폴리를 위해 책정했던 예산은 500억원. 이 중 50억원이 연구개발비로 투입됐다.

3∼7세를 타깃으로 삼은 전략도 주효했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대통령이라는 ‘뽀로로’의 타깃 연령대는 2∼4세. “그동안 시장에선 2∼4세가 아니면 취학아동으로 구분됐죠. ‘중간은 없다’였어요. 전 생각이 달랐죠. 그 시장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할까.”(이동우 대표)

이 대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던 두 아들을 통해 ‘3∼7세’ 시장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한다. “네 살 넘으면 더 이상 교조적인 언어의 가르침은 통하지 않거든요. 그 나이 아이들은 그리고 생각보다 와일드해요.”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시시하고, 일본만화 ‘파워레인저’에 푹 빠져 폭력적인 행동을 따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획한 만화가 로보카폴리였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창작콘텐츠산업팀 서희선(42) 팀장도 “로보카폴리는 뽀로로와 연령대가 다르다. 새로운 시장의 발굴”이라고 했다. 이 연령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은 변신 로봇 로보카폴리가 정말 변신시키기 쉽다는 점이다. 뒷바퀴를 빼고 양문만 열면 로봇이 된다. 인터넷 육아 카페에선 “우리 애는 로보카폴리를 ○초 안에 변신시켜요” 하며 자랑하는 엄마들의 글도 종종 올라온다.

만화영화 로보카폴리의 주제는 ‘구조’다. ‘걱정 마. 우리가 있잖아. 우리가 구해줄게.’ 하면서 위험에 처한 친구들을 찾아가 불을 꺼주고 병원에 데려다 준다.

“요즘 아이들 다 혼자 자라잖아요. 굉장히 소외돼 있고 타인과의 소통도 원활치 못한 경우가 많아요. 이 애니메이션은 혼자 있는 아이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요령을 알려주는 측면도 있고, 장면마다 외로운 아이들의 심정을 대변해 줍니다.”(이동우 대표)

공감과 위로. 제작진은 스토리 구성하고 캐릭터 그리며 이 부분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종종 등장하는 포크레인 ‘포크’. 이 캐릭터는 입이 없다. 장애아를 염두에 뒀다.

이동우 대표는 “만화에서 포크가 입이 없어 말을 못하면 친구들은 답답해한다. 결국 고립돼서 사고가 나고, 마지막에 로보카폴리가 출동해 구조되는 상황을 통해서 답답해하던 친구들이 포크의 심정을 이해하고 소통하게 된다”고 말했다.

뽀로로도 그랬다. 뽀로로는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펭귄. 뒤뚱뒤뚱 걷다가 툭하면 자빠지는 실수투성이 캐릭터다. 뽀로로를 만든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의 김지영(40) PD는 “나와 내 친구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8일 오전 이마트 전남 순천점에서 전화가 왔다. 로보카폴리 재고가 있냐고 물었더니 답변이 온 것이다. “고객님. 헬리 7개, 로이 10개, 앰버 7개, 변신 안되는 폴리 4개 있네요. 어떻게, 미리 빼놓을까요?”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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