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장현승] 미소 메이커 기사의 사진

우리 주변에 두뇌를 사용하는 게임은 많다. 그러나 바둑처럼 깊게 생각하는 게임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이처럼 인간의 지력을 다투는 게임의 명인이 된다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다. 두뇌의 우수성은 물론 뛰어난 기술, 전략, 전술을 끌어내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 해방 이후 종주국인 중국과 현대바둑을 탄생시킨 일본으로부터 바둑을 배워오던 한국은 1980년대까지 중국이나 일본과의 실력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90년대 한국은 세계 최강의 바둑 국가로 성장한다. 88년 세계 최초의 국제기전인 후지쓰배가 일본에서 창설된 이후 현재까지 우승 횟수만 놓고 본다면 한국이 60여회로 중국 일본을 압도적으로 앞선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무엇보다 한국의 바둑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타고난 조훈현 9단의 공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불과 아홉 살에 그 어렵다는 프로의 관문을 뚫었다. 바둑에 관한 한 그 누구도 그의 천재성에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 후 일본에 유학해 스승 세고에 겐사쿠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명인 이전에 사람이 되거라”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스승은 어느 분야든 누구에게든 있을 수 있다.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 하는 문제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 영향에 따라 훗날의 삶 전반의 가치가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바둑의 명인이 되도록 키워주겠다. 하지만 그전에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어린 제자 조훈현에게 세고에 스승이 한 말이다.

이 한마디 짧은 가르침에는 무언가 거역할 수 없는 약속과 조건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약속은 명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고, 조건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람이 되라는 스승의 이 말은 유추해 보건대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며, 진검승부인 바둑의 세계에서 명인이 되기 위해선 사람이 되는 가장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과연 그 과정에 졸업장을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환경이 더 좋을 수 없는 에덴동산에서도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중퇴하는 것을 성서를 통해 보게 된다. 한국 바둑계 전설 조훈현 9단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과 평정심이 유지되는 반전무인의 경지의 도를 터득한 것 같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전히 노력합니다’라는 그의 겸손함에서 세고에 스승이 원했던 ‘사람’을 본다.

천사 미하힐이 웃음지은 까닭

러시아의 전래 이야기에 등장하는 미하힐이라는 천사가 있다.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된다. 그는 벌거벗은 인간의 몸으로 추위와 두려움에 떨며 교회를 찾긴 했으나 문이 잠겨 있어 담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가난뱅이 구두 수선공 세몬을 만나게 된다. 세몬은 그날따라 외상값을 못 받아 울화가 치밀어 한잔 걸치고 집을 향해 가던 길에 벌거벗은 미하힐을 보게 된다.

불길한 생각에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그럴 수 없는 성정을 지닌 그는 외투를 벗어 입히고 그를 집으로 데려온다. 세몬의 아내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당장 내일 양식이 걱정인데, 남편에게 심한 잔소리를 해가면서도 따뜻한 밥을 지어 내놓는다. 그동안 아무 표정이 없던 미하힐은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겉모습의 사람이 아닌 ‘사람’을 본 것이다.

스승의 미소, 천사의 미소, 부모의 미소, 아내의 미소, 친구의 미소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과연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들이 해야 할 올바른 일은 무엇인가를 우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이 사람들처럼 하나님과 이웃의 미소를 만들어 내는 ‘미소 메이커’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장현승(과천소망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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