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영미] 파리의 소녀시대 기사의 사진

K팝이 유럽의 문화수도 프랑스 파리에 상륙했다. 그간 서구의 잣대는 무조건 따라야 할 ‘글로벌 스탠더드’였다. 자동차와 반도체를 아무리 많이 수출한들, 게임의 룰은 바뀌지 않았다. 문화는 규칙을 정하는 힘이다. 기준을 만들 권위를 갖는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강국의 꿈은 그렇게 시작됐다.

출발은 훌륭했다. 가요계는 유럽 주류를 매료시킬 대중문화의 ‘킬러 콘텐츠’를 찾아낸 듯했다. 파리 콘서트는 첫 시장조사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다만, 그게 한국 대중음악(Korean Pop), 즉 K팝의 유럽 진출이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동방신기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5팀의 합동무대였던 파리 콘서트는 엄밀히 말해 K팝이 아니라 한국 아이돌의 유럽 데뷔무대였다. 2011년 6월의 파리 상륙 사건은 시작도 끝도 아이돌인, 아이돌의 이벤트였다. 그리고 소식은 절묘한 순간에 터져 나왔다.

요즘 국내 가요판을 쥐락펴락하는 건 아이돌이 아니다. 서바이벌 혹은 오디션 예능프로그램이다. ‘나는 가수다(나가수)’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은 연일 음원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들 프로의 탄생 배경과 성공비결은 동일하다. 아이돌에 대한 비판이다.

최근 출간된 문화비평서 ‘아이돌’은 아이돌을 “10대에 데뷔한 연예인으로, 솔로보다는 그룹으로 활동하며, 체계적인 기획과 관리 통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스타”라고 정의했다. ‘나가수’ 등이 겨냥한 건 이 모든 것, 탄생 유통 소비를 통합한 아이돌의 정체성 자체였다. 대형기획사 선발 대신 공개 오디션을, 비주얼과 춤이 아닌 가창을 중심에 놓으며 이들 프로는 ‘안티 아이돌’을 지향했다.

높은 시청률을 보면 전략은 주효한 듯하다. 아이돌 가수의 출연 가능성만으로 ‘나가수’ 게시판은 비난글로 도배된다. 가수 옥주현은 아이돌 1세대 핑클 출신이라는 ‘어두운’ 과거를 딛고 ‘진짜’ 가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슈퍼스타 K’의 젊은이들은 기획사 시스템 밖의 가수로 주목받는다.

그 순간, 멀리 파리에서 승전보가 전해져왔다. ‘뜻밖에’ 선진 유럽의 10대는 아이돌의 비주얼과 무국적 음악, 현란한 퍼포먼스에 매료됐다고 했다. 놀란 어른들은 아이돌의 예쁜 얼굴과 춤을 다시 바라봤다. 저게 팔리는 상품이란 말이지? 걸그룹의 노출과 섹시댄스가 국정감사에서 비난받았던 사실은 잊혀졌다. 주가가 뛰고, 예산 지원이 논의됐다. 비난의 이유가 국가적 응원의 근거가 된 것이다.

이건 문화적 변덕일까. 혹은 내수용과 수출용의 차이일까. 알 수 없지만 지극히 불편한 종류의 애국주의와 열등감의 흔적은 발견했다.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아이돌을 ‘애국적인 방식으로 소비되는 초국적 상품’으로 규정했다. 중국인과 태국계 미국인, 해외 교포가 포진한 아이돌. 일본 뮤지션이 제작해 역수출된 보아의 음악. 미국 및 유럽의 뮤지션이 참여한 아이돌 팝. 이걸 ‘한국산’이라 주장할 근거는 희박하다. 그러나 재미교포인 2PM 멤버 박재범이 데뷔 전 쓴 한국인 비하 글이 발견됐을 때 그랬듯, 아이돌은 종종 광적 애국 논쟁의 장이 된다. 글로벌 상품이되, 한국의 대표선수가 돼야 하는 역설적 지점에 지금 아이돌은 서있다.

고백컨대, 열광하는 유럽 관객 앞에서 늘씬한 팔다리를 오만하게 흔들던 파리의 소녀시대를 봤을 때 살짝 가슴이 뛰었다. 서구인처럼 길고 오똑한 그들의 외모를 전시한 듯한 착각. 그건 못난 문화적 열등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아이돌을 내세워 유럽 정복의 깃발을 흔들수록, 더 적나라하게 펄럭이는 건 기성세대가 가진 내면의 열등감이다.

부디 아이돌은 세계무대에서 그들이 가진 것만으로 당당하길 바란다. 그러니까 ‘세계제패’ 같은 플래카드는 절대 흔들 일이 아니다. 파리의 슈퍼주니어 손에 들린 ‘슈주(슈퍼주니어) 세계제패’를 보고는, 부끄러워졌다.

이영미 문화과학부 차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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