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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김의구] 문재인 정치

[데스크시각-김의구] 문재인 정치 기사의 사진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문재인 변호사의 자서전 ‘운명’이 화제가 되고 있다. 15일 시판된 지 반나절 만에 초판 1만5000부가 동나 3만6000부 추가 인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책에는 불과 2년 전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비롯해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아직 우리 기억에 생생한 참여정부의 막후가 기록돼 있다. 민정수석을 두 차례나 지내고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했던 노 전 대통령 최측근의 입을 통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폭발적인 관심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문 변호사는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인사 가운데 한 명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담배 분향, 한명숙 전 총리의 애끓던 조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곡 등과 함께 전직 대통령의 마지막을 굳건히 지켰던 문 변호사의 모습은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유독 그가 강하게 각인돼 있는 것은 봉하마을을 압도하던 비탄과 통곡, 격노의 물결 속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들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토요일이던 그해 5월 23일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신변에 발생한 일을 최초로 공식 확인했다. 전대미문의 전직 대통령 참변 속에서도 그는 흐트러짐 없이 정확한 상황을 발표했다. 자서전에서는 “내 생애 가장 긴 하루였다. 그날만큼 내가 마지막 비서실장을 했던 게 후회된 적이 없다. 나 혼자 있지도 못했고 울지도 못했다”고 당시를 적었다.

이어진 장례 국면에서도 그는 사실상 상주 역할을 맡아 국민장-가족장 논란, 장례 절차와 영결식 장소 및 묘소 문제 등을 정부와 유족 사이에서 중재했다. 그를 매개로 도출된 결론들은 16대 대통령이라는 고인의 사회적·역사적 위치와 평생 비주류의 길을 걸었던 고인의 이념·가치관·유지까지 동시에 고려한 것이었다. 때로는 단호했지만 전반적으로 유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인의 정적인 한나라당의 조문단이 봉하마을에 도착했지만 항의 시위에 막히자, 그는 마을 입구까지 나가 “큰 결례다. 분향소까지 모셔야 하지만 상황이 어렵다”고 양해를 구했다. 조문단은 사의를 표한 뒤 그에게 조의를 전달하고 발길을 돌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따로 조문 갔을 때도 여의찮은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로 조문을 대신 받는 등 격동치던 상황에서도 상주의 예를 잃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자서전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치 행보를 시작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미 그는 지난 4·27 재보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김해을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을 중재해냈다. 내년 총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본인의 출마 문제에는 언급을 피했지만 가능성을 닫지도 않았다. 자서전에서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사람 사는 세상’과 ‘진보적 민주주의’의 요체를 ‘복지’로 정리했고 이를 실현할 방법론으로 우선 야권 통합을 제시했다. 국정을 운영하던 당시 정권의 역량 부족과 서투름 등에 대한 치열한 반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짧은 정치 이력의 그가 진흙탕 같은 싸움판에서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정쟁의 최전방에 서서도 그의 특장으로 꼽히는 ‘온화한 카리스마’가 유효할지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고인으로부터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말을 들었던 그가 평생 이념을 지키며 싸우느라 많은 적을 만들었던 고인보다 얼마나 숙성된 진보정치를 선보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로 남아 있다.

미래야 어떻든 ‘운명’의 판매량을 보면 슬픔과 분노, 야유와 독설이 엇갈리던 2년 전의 혼돈 속에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깔끔하게 정리했던 그에 대한 대중의 기대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하지 말라’고 토로했던 바로 그 갈등과 혼란의 판에 뛰어든 문 변호사가 어떤 그림을 보여줄지 관심이 가는 것은 그래서 비단 진보 진영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김의구 정치부장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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