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그리스에서 우리의 희망을 본다 기사의 사진

요즘 뉴스를 접하면서 때로 절망한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감독기관은 물론이고 힘깨나 쓰면서 줄이 닿는 사람이면 너나없이 다투어 한몫씩 챙기는, 하이에나들이 죽은 짐승을 놓고 벌이는 잔치 바로 그것이다. 나라 구석구석 썩지 않은 곳이 없다. 복마전이다. 일제 때 공주갑부 김갑순이 했다는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이다)”라는 말, 딱 그 짝이다.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대한민국의 초상 쳐놓고는 너무 흉물스럽다.

너무 대조적인 두 나라 국민

국내 뉴스에 절망하는 기자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는 건 해외 뉴스다.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 시위 사태가 그것이다. 기자는 그곳 일에 이러쿵저러쿵할 만큼 국제 정세에 밝지 못하다. 다만 우리 국민과 그리스 국민이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의 차이에서 우리의 희망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스는 알다시피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국가부도 위기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즉각 지원하지 않으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EU와 IMF 등은 그리스 정부가 초긴축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구제 금융을 해준다고 한다. 정부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학생들과 공무원을 비롯한 근로자들은 이에 반대하여 시위와 총파업으로 맞서고 있다. 긴축이 임금 삭감, 연금 등 복지 축소, 증세 등을 가져온다는 게 그 이유다. 이러한 상황은 이른바 PIGS(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에서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14년 전인 1997년에 비슷한 외환위기를 겪었다. 국가부도 위기에 빠져 IMF의 구제 금융을 받았다. IMF의 구제 금융은 IMF의 경제적 신탁통치와 동의어로 국치다.

우리가 국가적 위기를 맞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정부와 기업들에게 1차적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 모두는 정부와 기업들을 탓하기보다 국가 위기 극복이 먼저라며 고통 분담에 나섰다. 세계 유례가 없는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장롱 속에 고이 간직했던 아들 돌 반지를 꺼내는 등 모두 350만명이 이 운동에 참여해 250톤의 금을 수출함으로써 21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조달했다(그 금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으면 금값 폭등으로 대박이 터졌을 것이라는 진반농반의 말도 있지만). 많은 기업들이 사라지거나 살을 깎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내몰린 사람들은 거리 투쟁 대신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과 동료들이 잘 되기를 빈다는 눈물의 송별사를 했다. 직장에 남은 이들은 월급 일부를 떠나는 동료들의 위로금과 회사 살리기 기금으로 내놓았다.

그렇게 온 국민이 고통을 나눠짐으로써 우리는 당초 예정보다 3년이나 빠른 2001년에 IMF 빚을 다 갚고 경제 신탁통치에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300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2차대전 후 독립한 나라 중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가 우리밖에 없듯이, IMF 구제 금융을 받아 예정보다 앞당겨 상환하고 이 정도로 높은 외환보유고를 가진 나라 역시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금 모으기 vs 데모와 총파업

물론 그리스 국민들이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기를 드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정부의 무능, 긴축 정책이 국가경제를 살리는 길이 아니라는 판단 등도 그중 일부다. 그러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 방만한 국가 재정 운영, 특히 과다한 복지 정책에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를 탓하더라도 내 몫을 줄이는 긴축 정책에 동참함으로써 고통을 분담하는 게 국민 된 도리 아닌가 싶다.

나라야 부도가 나든 말든 빚을 내서라도 나를 잘 먹이고 잘 입히라는 저들에게 내일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에 반해, 비록 사회 일각에서 악취가 진동하지만, 그리고 정치권의 포퓰리즘 시비가 한창이지만 그래도 절대다수 우리 국민은 나보다는 나라를 앞세우는 애국자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우리의 내일이 훨씬 밝아 보인다. 쓰레기더미 위에서 장미꽃을 피운 우리 아니던가. 부패의 늪에서도 절망 대신 희망을 보는 이유다.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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