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야권 대선주자로 급부상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기사의 사진

“현실정치 헤쳐 갈 능력 내겐 없어… 발 딛기 겁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 17일 부산 거제동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만난 문재인(59)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정치를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나만 잘할 수 있다거나,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우길 정치인의 ‘뻔뻔함’이 그에겐 없어보였다. 흥미롭게도 그가 아니라고 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기대했다.

지난 15일 참여정부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을 내자마자 서점가는 ‘문재인 열기’에 휩싸였다.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서점에 배포된 책은 금세 동이 났다. 정치 입문 전부터 베스트셀러 저자였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제외하면, 생존 정치인의 독자 동원력으로는 전무후무하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문재인이란 주식의 액면가가 우회시장을 통해 확인됐는데 그게 정치권도, 독자도 놀라게 한 ‘대박’이었다. 이제 모두가 목격해 버렸으니 모른 체할 수도 없게 돼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곳에 ‘예스’라고도, ‘노’라고도 말할 수 없는 난감한 자리에 그가 서 있다.

-독자 반응이 열렬합니다.

“(출판사에서도) 기대보다 반응이 훨씬 빠르다고 이야기합디다. 관심 가져주고 많이 팔리니까 저로서는 정말 기쁘고요. 고마운 일이죠. 언론이 다뤄주는 방향은 아쉽게 생각돼요. 어떤 언론은 이인규 전 중수부장 얘기를 공방처럼 다루는데(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 때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 태도가 건방졌다는 책 속 언급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거 크게 중요한 거 아니거든요. 아니면 정치 할 거냐 말 거냐 그것만 물어보고. 내가 진짜 하고자 했던 얘기, 참여정부의 성과와 한계, 그게 논의되면 좋겠어요. 제 얘기에 공감하든, 아니면 무슨 소리냐, 참여정부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이제 와서 물타기하느냐고 나무라든.”

(인터뷰 중간 이인규씨 반박에 대한 반응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허, 그거 참. 이인규씨가 뭐라 하면 제가 또 답해야 되는 겁니까.’ 문 이사장의 목소리가 제법 높아졌다. 짐작컨대 ‘허, 그거 참’은 그가 허락하는 분노 표시의 최대치인 듯했다.)

-집필 작업이 굉장히 힘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때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비망록’을 쓰기로 했는데 건강 문제로 미뤄졌어요. 부랴부랴 3월부터 준비하게 됐는데, 저는 글이 더뎌요. 뭐든지 금방금방 순발력 있게 잘 안돼요.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아니지요, 거의 대부분이 노 대통령을 추억해야 하는 내용이어서 고통스럽기도 했고요. 마치고 나니 홀가분한 면도 있고, 큰 숙제 하나 마쳤다 생각도 들고. 개인적으로는 노 대통령을 떠나보낸다고 할까.”

-참여정부 회고록과 개인 자서전이 적당히 섞인 형식인데요.

“개인사는 대부분 (노 대통령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이에요. 참여정부에 대한 기록이나 증언, 성찰 같은 걸 더 다루고 싶었는데 자료가 없어서 못했어요. 퇴임할 때 국가기록원에 국정기록을 다 넘기고 복제본 하나 갖고 왔다가 엄청 야단맞고 다 돌려줬잖아요. 공개기록은 시스템 때문에 못 보고, 비공개 지정기록은 전임 대통령만 볼 수 있게 돼 있어 못 보고. 대통령 유고 시 유족도, 우리 같은 사람도 볼 길이 없어요. 입법 불비(不備)인건데, 이명박 정부가 그런 문제에는 도대체 관심이 없어요.”

-이명박 정부에는 답답한 게 많은 모양입니다.

“배척하고 적대하니까 폭이 점점 좁아져서 드디어 온 천하가 다 적이 된 거 아닙니까. 왜 정치를 그렇게 하는지. 제 사고나 세계관으로는 이해가 안 가요.”

-많은 이들이 문 이사장이 서거정국에서 보여준 침착함, 시위대에 막힌 한나라당 조문객에 대한 예의, 선비 같은 강직함을 기억합니다. 한편 책 속에는 걱정이 참 많은 사람, 문재인도 보여요. 문재인이 생각하는 문재인은.

“침착해 보인다고들 하는데, 원래는 열도 잘 내고 다혈질적인 면도 있어요. 공적 자리를 맡으면서 자기절제랄까, 그런 게 생긴 거겠지요. (서거정국에서 침착해보인 건) 체면 차리는 겉모습만 본 거고. 속으로도 침착했던 건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지요. 걱정이 많다는 건 맞아요. 노심초사형일 수도 있고. 완벽주의적인 게 있어서 저 자신을 많이 혹사시키는 편이에요. 대충대충 그렇게 못하고, 뭐 하나 하는 게 힘이 많이 드는 성격이에요.”

-공수부대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남자답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건 잘 모르겠고(웃음). 한때는 남자다웠을 텐데, 요즘에는 마누라한테 꽉 잡혀갖고(웃음). 우리 집사람이 나를 말하면, 거 뭡니까. 이중인격(웃음). 밖에 나가면 남녀평등 인권, 집에 들어오면 가부장(웃음) 그러지요. 그런 면도 없지 않을 거예요. 뭘 해라, 이런 건 일체 간섭을 안 하지만 내가 가진 가치는 가족들이 공유하길 바라니까.”

-책을 보면 청와대 민정수석 1년 동안 치아 10개를 뽑았다는 대목이 나와요. 노심초사와 관련 있겠네요.

“처음에는 정말로 잘해볼 욕심에, 열정에 그런 거죠. 누군들 안 그러겠습니까. 이 뽑은 자리에 솜뭉치 물고 마취도 안 풀린 상태에서 회의에 가는 거예요. 가서 아무 소리도 못 하면서. 그 시절에는 빠질 수가 없는 거죠, 심정이. 1년 만에 다들 건강이 상했어요. 이호철 양인석 비서관을 비롯해 민정수석실 여러 사람이 치아를 뺐는데, 딱 직급 순서대로 숫자가 많더라고. 우스개로 이거야말로 직무연관성에 대한 확실한 증거 아니겠느냐고 했죠.”

-대선 주자로 부상하는 때 책이 나왔습니다. 제목이 ‘운명’인 것도, 마지막 문장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됐다”도 의미심장합니다.

“제목을 두고 정치적인 해석이 나올 줄 알았어요(웃음). 원래 ‘동행’을 생각했는데 이희호 여사님이 ‘동행’이란 자서전을 내셨잖아요. 그분이야말로 동행이라는 말을 최우선적으로 쓸 자격이 있는 분이니까 피하다 보니 그렇게 됐고요. (제가 정치를 안 한다는 건) 잘 못할 것 같으니까. 정치인은 현실정치를 헤쳐 갈 능력이 필요해요. 아주 강인한 근성, 선거를 치를 능력이나 개인기 같은 거. 저한테 없는 것들이에요. 현실정치는 우리 보통사람들하고는 너무 다른 세계처럼 보여서 정말로 발을 딛기가 겁나요. 조금 다른 게 아니고 아예 세상이 다른 거. 다만 정권교체의 대의는 부정할 수 없잖아요. 다들 힘을 보태야 하고 나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생각은 갖고 있어요. 통합을 돕거나 부산경남 쪽에서 통합 후보가 나오면 총선에서 돕거나.”

-공수부대 시절 얘기도 그렇고 책을 보면 힘든 일도 닥치면 해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어이구, 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닌 게 있죠. (대선 출마는) 아예 삶 자체를 바꾸는 엄청난 일인데 다 그리 되겠습니까. 어머니부터, 집사람도 그렇고, 가족들은 제가 정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오랜 친구들도 정치체질이 아니라고 하고. 행복하지 않을 거다, 그래요.”

-가족사진이나 에피소드도 나오던데 가족 반응은 어떤가요.

“책 속 결혼식 사진을 직접 골라준 게 아내였어요. 책 읽어보고 집사람은 ‘당신을 좀더 이해하게 됐다’ 그래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어제 책을 한 권 드렸더니 방금 전화가 왔는데, 아주 재미있게 봤다고, 아예 전문 글쟁이로 나서라고 그러네요(웃음). 사실 우리 어머니가 책 보고 무슨 말씀을 하실지 제일 궁금합니다. 나무라실지 몰라요. 어려운 시절(부산역에 암표 장사 나갔다가 그냥 돌아온 일이며 작고한 아버지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얘기 뭐 하러 썼냐고.”

문 이사장 집은 경남 양산시 외곽에 있다. 청와대를 떠나면서 지친 몸을 그곳에 숨겼다. 민가 다섯 채가 드문드문 선 계곡 길 마지막. 마당에 뱀이 나오고 방에 지네가 출몰하는 시골집이다. 대권 주자로, 친노 맏형으로, 야당 중재인으로 곳곳에서 ‘문재인’을 찾는 지금도 그는 막비행기를 놓치면 새벽기차를 타고서라도 기어이 집에 돌아간다. 대학 1학년 때 자신을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한 아내가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서워한다”고 했다.

얼굴을 맞댄 2시간30분 동안, 그는 몇 번 진심으로 유쾌해졌다. “지네란 놈이 내 눈에는 안 띄고 늘 집사람 눈에 먼저 띈다”고 말할 때, “그놈이 요즘 잘나가는 데요”라며 미디어아티스트로 세계 곳곳 전시회에 불려 다닌다는 아들 자랑을 꺼낼 때, 출가한 딸 얘기를 할 때 그는 활짝 웃었다.

정치도, 노 전 대통령 얘기도 끝내 힘들어했다. 그는 친구의 숙제들 앞에서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 문재인은

1952년 경남 거제 출생. 부산 경남고, 경희대 법대를 거쳐 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된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인권변호사로 활약한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부산선거대책본부장을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2003·2005), 시민사회수석(2004), 비서실장(2007)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에는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을, 현재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이영미 김호경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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