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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어렵나요 함께 조작해 볼까요?… ‘연애조작단’ 한세라·진보나의 사랑학 개론

사랑, 어렵나요 함께 조작해 볼까요?… ‘연애조작단’ 한세라·진보나의 사랑학 개론 기사의 사진

요즘 대학생활의 꽃이라는 교양과목 ‘댄스 스포츠’. 수강신청 경쟁률이 워낙 높아 청강생도 많다. 특히 공대 남학생이 많고, 복학생들에겐 ‘필수과목’처럼 됐다. 왜냐고? 여러분이 짐작하는 그런 이유다.

공대 복학생 철수(가명)씨도 지난 2월 수강신청에 성공했다. 이제 한 여학생과 파트너가 돼 한 학기 동안 왈츠와 탱고를 출 것이다, 나의 연애사에도 봄날이 올 것이다, 당당하게 들어간 첫 수업.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군대에서 갈고닦은 남자다움은 갑자기 사라지더니, 제대로 쳐다보기도 어렵다.

남학생들이, 특히 복학생들이 항상 그렇듯, 철수씨도 친구들 모아놓고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하면 그녀와 사귈 수 있을까. 이럴 때 ‘친구들’은 대부분 성격과 무관하게 저돌적인 남자가 된다. “뭘 망설여?” “밀어붙여.”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 봤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 요즘 많아졌다. 망설이면서 한 달쯤 지났을 때 강사는 “다음 시간에 파트너를 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그녀와 말 한마디 못해봤는데, 무조건 파트너가 돼야겠는데…. 디데이(D-day)를 이틀 앞두고 철수씨는 ‘여성 2인조 연애조작단’의 문을 두드렸다.

2인조는 이렇다.

①한세라: 20대 중반. 순수미술을 하는 예술가. 무지하게 외향적이고 감성적인 성격. 대학 시절 평범한 모범생부터 희한한 전위예술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겪었다. 연애 경험을 통해 인간관계의 내공을 다졌다. ‘연애는 경험이다’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②진보나: 20대 중반.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이론, 심리학, 대화법 등을 남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연애도 결국 소통의 문제이고, 노력할수록 실력이 향상된다고 주장한다. 역시 무지하게 사교적인데, 감성보다 이성을 앞세워 어떤 상황이든 분석하려 든다. 그가 생각하는 연애란? 섬세한 과학이다.

완벽한 각본을 짜서 연애에 서툰 이들의 사랑을 이뤄준다는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극장에서 내려지고 한참 뒤에야 이 영화를 본 두 사람, 10년 넘게 붙어 다닌 친구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동안 우리가 들어주고 같이 고민했던 친구들의 연애, 아마 책으로 쓰면 여러 권 되겠지? 잡지에 실리는 숱한 연애 고수들의 상담… 다 소용없다는 거 잘 알잖아. 연애조작단, 우리가 해볼까?’

두 사람은 잠 못 이루는 청춘들을 향해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체험하게 해드립니다”라는 짧은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이를 보고 찾아온 첫 ‘고객’이 철수씨다.

영화에선 의뢰인들이 연애조작단에 거액을 지불한다. 2인조가 철수씨에게 요구한 돈, 5000원이었다. 지난 3월 인터넷에 ‘오천원’이란 재능마켓(www.5000won.co.kr)이 문을 열었다. 사람들과 나눌 만한 재능이 있다면 누구나 여기서 팔 수 있다(권장가격이 5000원이고 아무리 비싼 재능도 2만5000원을 넘을 수 없다). ‘비즈니스’라기보다 약간의 동기가 부여되는 ‘재능기부’에 가깝다.

“저는 5000원에 영어일기를 교정해드리겠습니다.”

“저는 5000원에 매일 아침 모닝콜을 해드리겠습니다.”

“저는 5000원에 트위터 팔로어들에게 당신이 하는 일을 홍보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재능 상품이 올라오는 ‘오천원’에서 2인조의 상품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체험하게 해드리겠습니다”는 등장하자마자 조회수 1위에 오르더니 계속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들의 ‘연애조작’은 재능기부 차원의 ‘사회적 비즈니스’인 셈이다.

2인조는 4월 초 철수씨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7건 ‘의뢰’를 받았다. ‘모든 연애는 다 다르다’고 믿기에 이들은 동시에 여러 건을 진행하지 않는다. 연애에는 모범답안이 없으니 의뢰인마다 상황을 분석해야 하고, 그러려면 한 번에 1건, 많아야 2건 이상은 다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상담은 의뢰인이 현재 상황과 고민을 문서로 정리해 이들에게 보내는 걸로 시작된다. 철수씨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한 달 관찰한 그녀는 어떤 사람인지, 댄스스포츠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내왔다. 이를 검토한 2인조와 철수씨는 시간을 정해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연애조작 컨설팅은 인터넷 메신저를 이용한 온라인 채팅으로 진행된다.

철수: 이틀밖에 안 남았어요.

2인조: 사람 눈은 다 거기서 거기예요. 철수씨가 한눈에 반했으면 남들도 마찬가지죠.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할 거예요.

철수: 미리 파트너 신청을 할까요? 그녀가 아르바이트하는 도서관에 찾아가서.

2인조: 연애는 ‘저 사람, 나한테 관심 있나?’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돼요. 미리 “파트너 해주세요” 하는 건 “나 관심 있어요”랑 같은 말인데, 왜 그녀가 궁금해할 기회를 빼앗으려 하세요.

철수: 서로 손잡고 춤추다가 잠깐 서서 쉬는 시간이 있어요. 그때 그녀의 손을 놓지 말고 그냥 잡고 있으면 어떨까요? 내 인상을 심어주는 거죠.

2인조: (메신저 대화창에서 두 사람이 합창하듯 동시에 말했다) 손은 놓으십시다!!

철수: 왜…? (그는 숙고 끝에 이 방법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한 터였다)

2인조: 남자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버리세요. 스킨십은 여자에게 중요한 무기예요. 섣부른 행동은 조심해야 할 사람으로 오해받기 쉬워요.

이런 온라인 컨설팅은 보통 1시간~1시간30분 계속된다. 2인조가 철수씨에게 제시한 방법은 이렇다.

“그날 수업 전에는 절대 운동하거나 오래 걷지 마세요. 냄새에 민감한 여자, 아주 많아요. 땀 냄새라도 풍기면 이건 해보나 마나예요. 그렇다고 향수를 뿌리진 마세요. 산뜻한 비누냄새, 제일 좋아요.

저도 댄스스포츠 수강했는데, 남자 손을 잡을 때 축축하면 확 던지고 싶어요. 손수건 꼭 준비하시고, 수업 전에 찬물로 손 씻고 잘 말리세요. 상대방의 오감(五感)을 배려하세요.

배우 이민호가 드라마에서 면바지 입고 나오죠? 이민호니까 그렇게 입어도 되는 거예요. 그냥 청바지 입으세요. 여자는 자기랑 같이 있을 때 튀어 보이는 남자보다 자기랑 어울리는 남자를 좋아해요.

소개팅 해보셨죠? 여자가 철수씨 말에 잘 웃던가요? 그거 절반은 웃어주는 거예요. 유머러스한 남자가 되겠다는 욕심은 버리세요. 여자가 웃어주는 데도 한계가 있어요.

남자들이 여자한테 ‘마음에 든다. 전화번호 알려달라’ 하잖아요. 그럼 여자는 ‘헐~ 이건 뭐야?’ 해요. 처음부터 재미가 없는 거예요. 벌써 내가 마음에 든다니까. 동등한 관계로 시작하세요.

연애 시작을 위한 제일 좋은 멘트는 공통 관심사예요. 철수씨 상황에선 춤인 거죠. 그녀와 춤추면서 이런 말을 해보세요. ‘되게 잘하신다. 저는 쩔쩔매고 있는데.’ 칭찬, 아주 중요해요.

파트너 정하는 시간이 오면,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마세요. 얼떨결에 ‘네’ 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철수씨가 그녀를 선택해야지, 선택 받는 처지가 되면 안 돼요.”

얼마 뒤, 철수씨에게서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고마워요. 그녀와 잘 지내고 있어요.”

2인조를 만난 것은 21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였다.

-연애조작단, 어떻게 시작한 거죠.

“우연히 ‘오천원’ 사이트를 발견했어요. 재밌겠다, 우리만 해줄 수 있는 재능 뭐 없나, 3분쯤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시라노 연애조작단’ 보면서 ‘저런 게 현실에 있다면 우리 친구들 절반은 당장이라도 찾아갈 텐데’ 생각했던 게 떠올랐거든요.”

-이 일을 하는 목적이랄까… 왜 하나요.

“휴머니즘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웃음) 사람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게 뭘까 생각해봤는데, 일과 사랑, 직업과 결혼 아닌가요? ‘연애’ 하면 굉장히 가볍게 들리지만, 사랑하는 사람 만나 평생 함께할 가족을 꾸리는 과정, 이라고 풀어보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에요. 똑똑하든, 잘생겼든 연애 고민은 누구나 하게 돼 있죠. 가만히 돌이켜보면 우린 언제나 누군가의 연애 고민을 들어주고, 안타까워하고, 해결책을 연구하고 있었어요. 연애 때문에 방황하는 청춘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고, 우리에겐 그만큼 노하우가 쌓여 있겠죠. 젊은이들이 밤잠은 편하게 자도록, 남자들끼리 술 마시며 시간 허비하지 말도록, 여자들끼리 서로 괜찮은 점 찾아내며 애써 위로할 필요 없게 도와주자, 그게 우리 목적이에요. 절대 5000원 벌려는 게 아니고.(웃음)”

-7건 의뢰인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절반은 철수씨처럼 특정 대상을 놓고 애태우던 경우였고, 나머지는 연애에 실패한 뒤 ‘난 왜 연애를 못할까’ 고민하던 분들이었어요. 남자 5명, 여자 2명. 연령층도 다양해요. 갓 대학 들어간 스무살 학생부터 30대 중반까지. 한건 처리하는 데 열흘에서 2주 정도 걸렸어요.”

-연애 고민은 친한 친구에게나 털어놓는 민감한 사생활인데.

“저희는 항상 ‘공개하고 싶은 데까지만 말씀하세요’ 해요. 그런데 일단 채팅을 시작하면 너무 솔직하게들 얘기하세요. 얼굴 보고 했으면 못했을 얘기, 자존심 때문에 친한 친구에게도 못한 얘기까지. 고민을 풀어놓을 배출구가 필요했던 거죠.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상황을 돌아보게 하고,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어요.”

최근 이들을 찾은 의뢰인은 서른을 갓 넘긴 여성이었다. 번듯한 직장에 동안(童顔)이란 말을 별명처럼 듣던 ‘골드미스’. 모든 것을 빨리빨리 처리하는 급한 성격 덕에 ‘일’에선 성공을 거뒀지만, 친구들은 결혼해 아이를 낳네 마네 하는데 아직 솔로로 남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간간이 들어오던 소개팅도 맥이 끊겼고, 맞선 자리에서 ‘열쇠는 몇 개나?’라는 자존심 상하는 소리도 들어본 그녀. 요즘 유행하는 소개팅 사이트에 휴양지에서 건진 늘씬한 사진을 올렸더니 남성들의 연락이 쇄도해서 자신감을 얻었다가 그중 한 명과 아주 지루한 소개팅을 하고는 다시 풀이 죽었다.

기분이라도 풀려고 친구들과 놀러 간 클럽에서 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우여곡절 끝에 데이트를 시작했고, 그녀는 ‘진심을 보여주면 통하겠지’라는 연애 초기에 ‘아주 좋지 않은’(2인조는 이렇게 진단했다) 방법을 쓰다가 또 실패를 맛본 터였다.

-그 여성에겐 어떤 얘기를 해줬나요.

“망쳐버린 연애도 아프지만 곱씹어 삼켜야 해요. 다음 만남의 밑거름이 되도록. 상대 남성과 나눈 대화, 몸짓, 문자메시지, 전화통화를 하나하나 되짚으면서 문제점과 개선책을 같이 고민했어요. 그 분은 우리에게 왔을 때 자신감을 잃고 무력감에 빠져 있었어요. ‘당당해지기’ 훈련을 했죠. 스스로를 아껴야 한다, 자기한테 너무 엄격해지지 말자,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의 사랑이 찾아온다.”

-연애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 걸까요.

“요즘 소통 부재의 시대라는데, 연애도 결국 소통이에요. 어쩌면 개인과 개인이 소통해야 하는 상황 중에서 가장 리스크가 큰 걸지도 몰라요. 실패하면 자기비하에 빠지기 쉽죠. 이 소통의 문제는 해결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잖아요? 저희가 한 사람씩이라도 해보려고요. 적어도 ‘무한도전’보다는 잘할 수 있어요(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최근 짝사랑 남녀의 사랑을 이뤄주려 시도하는 ‘연애조작단편’을 방송했다). 커피 한잔 가격이지만 진정성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두 사람은 지금 연애를 하고 있을까? 비밀이란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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