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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라동철] ‘나가수’에 대한 단상

[데스크시각-라동철] ‘나가수’에 대한 단상 기사의 사진

MBC TV 예능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지난 3월 초 첫 방송 이후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1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몰고 다닌다.

프로그램이 끝나기가 무섭게 각종 온라인 음원 차트 상위권은 그날 출연 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이 휩쓸다시피 한다. 출연 가수는 물론이고, 대중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던 편곡자나 피처링에 참여한 보조가수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까지도 지난주 열린 장차관 국정토론회에서 ‘나가수’를 예로 들면서 프로정신을 강조했을 정도다.

‘나가수’가 몰고 온 변화는 크다. 아이돌 그룹과 댄스음악이 주도하던 방송 가요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가수의 존재 근거인 가창력과 실력 있는 ‘진짜 가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기 음악세계를 구축해온, 내공 있는 가수들의 열창을 TV를 통해 매주 볼 수 있다는 건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반가운 일이다.

국내 음악방송과 음반·음원시장은 대형 기획사가 키워낸 아이돌 그룹이 주도해 왔다. 그러던 차에 숨은 고수들이 등장해 아이돌은 범접하기 어려운 초절정의 내공을 뿜어대니 후련함마저 느꼈을 팬들이 적지 않을 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세시봉 열기’에 이은 ‘나가수 열풍’은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연령대 가수에 대한 수요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는 무대, 진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 가창력 있는 가수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로 감동을 전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는 어느 정도 달성된 것 같다.

하지만 ‘나가수’의 인기에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정상급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어색함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말도 안돼? 어떻게 최고 프로들의 노래에 점수를 매겨 탈락시킬 수 있데?’ ‘그건 가수와 예술에 대한 모독 아니야?’ 이런 생각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가수’가 회를 거듭할수록 우려는 현실이 돼 가고 있는 느낌이다. 출연 가수들의 열창에는 입이 절로 벌어지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긴장하고 힘들어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짧은 순간, 한 곡으로 청중평가단을 휘어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또 다른 왜곡을 낳고 있다. 노래에 지나치게 힘이 많이 들어가고 노래만으로는 왠지 부족할 것 같으니 자극적인 퍼포먼스가 자꾸 끼어든다. 그건 ‘새로운 시도’일 수도 있지만 ‘자기 색깔’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노래를 들을 때 느꼈던 감동은 순위를 가리고 탈락자를 발표하는 순간사라지고 없다. 노래는 일상에 찌든 이들에게 위로와 평안, 그리고 즐거움을 주는 존재 아닌가. ‘나가수’의 노래는 지금 그런 역할을 하고 있나? 그렇지 않아도 경쟁 지상주의에 매몰된 사회에서 프로 가수들에게까지 서바이벌 경쟁을 강요하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한 출연 가수는 “가수를 절벽에 세워 놓았다”고 중압감을 토로했다.

‘진짜 가수’들이 힘들어하면서도 이 프로에 출연하는 건 우리 음악시장의 불균형과 방송의 편식성의 방증이다. ‘진짜 가수’들에게 ‘나가수’는 자신과 자기 노래를 알릴 절호의 기회이다. 실력을 갖추고도 대중에게 다가갈 무대를 갖기 어려운 가수들은 부지기수다.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하지만 기회를 찾지 못하는 대중도 많다.

우리 대중음악이 풍요로워지려면 실력 있는 가수, 좋은 노래들이 대중과 만나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우리 방송은 음악프로그램이 몇 안 된다. 시청률을 이유로 들지만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지, 수요는 있기 마련이다. ‘나가수’는 단점도 한계도 있지만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 확인해 줬다는 점에서 공로가 있다. ‘나가수’의 성과가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강화하고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다.

라동철 문화과학부장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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