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조성기] 제자로서의 결단 기사의 사진

중국의 맹자 선생은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 하여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부모, 형제, 친척들이 큰 사고 없이 무사하게 지내는 것이요, 둘째는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요, 셋째는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제자를 삼는 것이라고 했다.

맹자 선생 당시만 해도 학교라는 제도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스승과 제자들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매일 가르치고 배우는 생활이 이어졌다.

제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가를 말해주는 유명한 예화가 있다. 열자는 노상씨라는 스승에게서 24년 동안 배웠다. 처음엔 노상씨가 열자를 쳐다보지도 않다가 3년이 지난 후에야 꼭 한 번 열자를 쳐다보았다. 스승이 3년 만에 자기를 한 번 쳐다본 것에 열자는 감격했다.

다시 노상씨는 열자에게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 또 흐른 후에 노상씨가 열자를 향해 꼭 한 번 웃어보였다. 그리고 또다시 7년이 지나고 나서야 노상씨가 열자를 꼭 한 번 자기 옆으로 와 앉도록 했다. 그 후 다시 9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열자는 스승이 원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

예수님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이렇게 고되고 어려운 집단교습의 형태가 오랫동안 지속돼 오다가 근대에 이르러 학교라는 제도가 생기고 대학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학교와 대학 제도가 한계에 이르렀다. 학교 폭력이니 왕따니 입시 개혁이니 반값 등록금들이 언급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대안학교나 재택스쿨 같은 것이 등장하면서 다시 옛날 교습 형태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도 스승과 제자들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가르치고 배웠다. 불교와 가톨릭은 옛날 제자집단의 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는 편이나 개신교는 집단에 눌린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다 보니 제자집단이 해체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교파분열이 일어나고 결국 개교회주의로 나아가는 폐단도 생겼다. 요즘은 많은 신자들이 생활 속에서 예수의 제자로서 살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훈련시키며 노력하기보다 그저 신앙을 생활의 한 방편 정도로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는 허다한 무리를 향하여 돌이키셔서 무리들이 부담을 느끼고 도망갈 말씀을 하셨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미워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세오’는 저주하는 마음이 없이 미워한다는 뜻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이는 단어이다. 거기서 발전해 ‘덜 사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족관계에서도 그렇게 해야

그러므로 무리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누구를 미워하고 사랑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을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른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예수님을 우선순위에 두려고 노력을 하지만 가족관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예수님보다 친밀한 이런 가족관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데 방해가 되기 쉽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 주변에 있는 허다한 무리 정도로 만족하겠다면 몰라도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로 살려고 마음먹는다면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예수님을 우선순위에 두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생각 없이 군중심리로 예수님 주변의 허다한 무리들 속에 섞여 있을 것인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분명한 대가를 치를 것인가 결단을 해야 한다.

조성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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