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MB의 반대로만 한다면…” 기사의 사진

상황은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면서부터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정부의 세종시법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고, 정운찬 총리가 그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김태호 후임 지명자마저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이 모든 일들엔 한나라당 내 비주류인 박근혜계의 노골적인 동조와 주류인 이명박계 일부의 암묵적 협조가 있었다. 청와대가 하던 일들이 한나라당의 동조로 좌절됐다는 건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시권에 진입했다는 얘기다. 그 일들이 이른바 통치권과 무관치 않은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CEO 대망론이 한계론으로

그렇게 가시권에 들어온 레임덕 현상은 금년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다시 패배하면서 걷잡기 힘들 정도로 번져가고 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정부의 법인세 및 고소득자 소득세 감면 정책을 철회하여 그 재원으로 반값 등록금 문제 등을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7월 전당대회에 출마한 일부 대표 후보들은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있다. 여야 구분이 희미해진 한나라당의 좌클릭은 MB노믹스(이명박 경제정책)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또 많은 후보들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경쟁적으로 구애작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이 살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후보들도 없지 않다.

2000년대 초 부시 미국 전 대통령 시절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이 했던 것만 아니라면 뭐든지)라는 조어가 유행했었다. 클린턴 전임 대통령이 했던 것과 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우리나라에서도 이 말을 빌려와 ABR(Anything But Roh·노무현이 했던 것만 아니라면 뭐든지)라는 조어가 나돌았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국민 절대 다수가 노 전 대통령 시절의 이념 갈등, 국정 전 분야에 걸친 개혁 등에 대해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념보다는 실용주의를 중시하고, 도덕성보다는 국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원했다. 그래서 직업 정치인 대신 CEO 출신 지도자를 선택했다.

그렇게 탄생한 새 정부에서는 능력만을 중시한 탓인지 도덕적으로 흠 있는 인사들이 다수 요직에 기용됐다. 결과만을 중시한 탓인지 국민과의 소통 등 민주적 절차가 등한시됐다. 거시경제를 중시한 탓인지 양극화 심화로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팍팍해졌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이 CEO 출신 지도자의 한계라고 탓하기 시작했다. CEO 출신 지도자 대망론이 CEO 출신 지도자 한계론으로 바뀐 것이다.

전임자 전철 안 밟으려면

이런 현상이 더 진전되고 총선과 대선이 가까워지면 “이명박이 했던 것만 아니라면 뭐든지”라는 의미의 ABL이라는 조어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차기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리더십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에서까지 이 대통령 권위가 부정당하고 국민 사이에서 신뢰가 실추되면 그리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역대 우리 대통령 대부분이 임기 말에 자기가 만든 당에서마저 차별화 대상이 되다가 결국 쫓겨났다.

이 대통령이 전임자들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임기 말에 나타나기 쉬운 가족 및 친인척들과 측근들의 비리가 없도록 감시의 눈을 부릅떠야 한다. 또 이미 한계에 달했다고 할 만큼 무너진 공직 기강을 빨리 다잡아야 한다. 그리고 아예 무시됐던 당정(黨政) 관계 및 야당과의 관계 재정립 등을 통해 이제부터라도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여당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져 정책 등 모든 면에서 콩가루 집안의 인상을 주고 있는 당정 관계를 추스르는 일이 급선무다. 아쉬운 대로 그렇게라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국민, 특히 서민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니할 말로 정권은 이제 야당은 물론 여당에게까지 만만하게 보일 시기에 접어들었다. 나를 따르라고 해서 억지로나마 따라갈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정권이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단호해야 할 때 단호하고, 설득해야 할 때 설득하고, 굽혀야 할 때 굽힐 줄 알아야 하는 엄중한 시기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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