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77) 웃음으로 감춘 슬픔 기사의 사진

어여쁘게 치장한 말 드리개, 그 위에 비파를 매고 올라탄 여인이 누군가. 한나라 원제의 후궁인 천하절색 왕소군. 얄궂은 운명에 이끌려 흉노 왕에게 시집가는 신세로 전락한 소군이 지금 오랑캐 땅에 들어서고 있다. 그녀를 맞는 것은 매서운 황사와 시든 풀, 고향을 저버린 회한은 값비싼 매무새로도 감출 수 없다.

왕소군의 미색은 시인들의 침을 마르게 했다. 오죽하면 청나라 원매가 ‘타고난 절색은 그림으로 못 그려/ 황하에 비친 그림자로 본다네’라고 읊었을까. 그녀의 별칭은 ‘낙안(落雁)’이다. 기러기가 날다가 그녀를 보고 놀라 뚝 떨어졌다는 거다. 성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기울게 한 미인은 있어도 기러기를 떨어뜨린 여인은 왕소군 밖에 없다.

흉노족의 초야는 삭막했다. 모래바람이 자욱하게 몰아쳐 소군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았다. 하여 어느 시인은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를 네 번 반복한 시로 그녀의 쓸쓸한 심사를 대변했다. 무슨 뜻이 되는가. ‘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지만/ 오랑캐 땅인들 화초가 없을까/ 어찌 땅에 화초가 없으랴만/ 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구나’.

18세기 깔끔한 풍속화로 소문난 강희언의 그림이다. 색감은 세련되고 장식은 섬세하다. 고운 아미가 흔들릴 뻔하건만 화가는 소군을 어찌된 셈인지 웃음기 띠게 그렸다. 한나라 화원이 소군을 못난 얼굴로 그리는 바람에 팔려가게 된 속사정을 뒤늦게나마 위로하려고 했던가. 그나마 감상평을 쓴 강세황이 ‘비파에서 구슬픈 노랫가락 들리네’라고 써 애조를 부여했다. 뒷날 오랑캐 땅에도 새파란 풀이 돋았다. 왕소군의 무덤이었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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