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김나래] 여의도판 ‘나가수’는 안되나 기사의 사진

한나라당 당권 레이스가 한창이다. 4·27 재·보궐선거 패배로 전임 지도부가 물러난 ‘비상 상황’에서 새로운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다음 달 4일 열린다. 이를 위해 지난 24일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권역별 비전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한나라당이 ‘총선 대선을 앞두고 절체절명의 위기다’라며 전대를 열기로 했을 때 ‘마이너리그’ ‘어차피 내년 총선 다음날이면 사퇴할 지도부’ ‘연말부턴 비대위 체제로 갈 거다’라는 비아냥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엔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위기라며 엄살떠는 의원들의 모습이 적어도 그 순간엔 진짜처럼 보였다.

그리고 너도나도 뛰어들 것 같다는 전망과 달리 7명의 후보들이 나왔을 때 일각에선 여의도판 ‘나는 가수다’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왔다. 차기 대권주자는 아니어도 차차기 주자로 손색없는 ‘쟁쟁한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이 정도 후보들이 나온 걸 보면 당이 많이 달라진 거다. 격세지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한 홍준표 전 최고위원,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원희룡 전 사무총장, 대중적인 스타 정치인 나경원 전 최고위원, 한나라당 소장파의 리더격인 남경필 의원, 박근혜 전 대표 비서실장 출신인 유승민 의원, 외교통으로 수도권 3선인 박진 의원, 당의 중도성향을 지켜온 서울 3선의 권영세 의원. 적어도 이 7명은 ‘영남 꼴통’이라거나 ‘부패한 웰빙 정당’이라는 과거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깨기에 부족함 없는 후보라는 게 당내 일관된 평가였다.

하지만 선거 중반 이들이 벌이는 경쟁은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친이명박계 후보’라는 단어의 등장을 시작으로 21세기 대명천지에 ‘공작정치’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특정 계파의 지지를 받아 후보가 되려는 건 아니다’는 후보자 본인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친이계 후보라는 이유로 배척을 받는 현실이다. 상대방을 향해 ‘줄세우기’와 ‘공작정치’라는 단어를 퍼부으며 한나라당을 공작정치가 횡행하는 당으로 만드는 모습도 이해하기 쉽진 않다.

적어도 여의도판 나가수, 다음 보수 정당을 이끌어갈 정치인들이 각자 갖고 있는 리더십과 비전, 필살기로 일합을 겨루는 멋진 승부를 기대했던 이들로선 황당하기 그지없다. ‘나가수’에 등장한 가수들이 자기와의 경쟁을 통해 각자 최고의 무대를 선사하는 것과 달리 한나라당 후보들은 상대방과의 이전투구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닌지.

청중평가단에 비견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비슷하다. 한나라당의 변화와 쇄신이라는 얘기를 하면서도 정작 물밑으로는 내년 총선 때 자기 공천을 책임져줄 사람을 찍겠다는 속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한 초선 의원은 “친이·친박 계파도, ‘새로운 한나라’ 등 쇄신 모임도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내년 총선 공천에 대비해 친한 사람이 꼭 하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고 말했다.

급기야 후보 사퇴는 물론 정계은퇴 얘기까지 튀어나왔다. 막말 경선, 과열 경선을 치른 이들은 선거가 끝난 다음날부터 함께 원탁에 둘러앉아 한나라당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집단지도체제’의 일원이다. 친이·친박 계파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실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2007년 당내 경선 후유증 때문이다. 아직 그 앙금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수차례 경선을 통해 매번 적과 동지를 만들었다 해체하고 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나가수’만큼은 아니더라도 국민들, 아니 적어도 집권 여당이 잘 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줄 순 없는 것일까. 여의도판 ‘나가수’는 정말 안 되는 걸까. 28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네 번째 비전 발표회. 그곳에서 만난 한나라당 지지자라는 50대 남성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 더운데 이리 모여 떠들어봤자 지들 얼굴 알리는 데 도움이 될 진 몰라도, 이런다고 당이 달라지길 하나 좋아지길 하나, 아무 소용이 없다.”

김나래 정치부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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