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기름시장 세금부터 손보아야 기사의 사진

“업계에 엄포만 놓을 게 아니라 먼저 유류세를 내려 분명한 사인을 보내고…”

한때 서울시내와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5개까지 주유소를 운영했었다는 K사장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기름장사로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고 자랑했다. 그해 여름 달러당 800원대 후반까지 떨어졌던 환율이 마구 뛰어오르면서 국내 기름값도 폭등했다. 연초 가격 자유화가 단행돼 매일 공개되는 원유가와 환율 추이만 알면 국내 기름값을 훤히 예측할 수 있었다. K사장은 본인 금고는 물론 친인척들로부터 될수록 많은 돈을 긁어모아 기름을 확보해놓고 시일만 끌면 떼돈을 벌었다. 물량 확보를 위해 주유소 유류저장 탱크를 모두 활용하고 가능하면 임대까지 했다.

돈 놓고 돈 먹기 식 기름장사는 환율이 안정되면서 사라졌나 싶었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주유소 사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어 유통시장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정유사 담합 의혹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지방자치단체와 주유소들은 지역상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진입장벽을 설치해 대형마트 등의 주유소 진출을 견제해왔다. 정부도 소비자 보호와 물가안정 차원에서 시장왜곡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지역상권 눈치를 보다가 일을 그르친 측면이 있다.

다음 달 7일로 예정된 정유사들의 휘발유·경유 공급가격 할인종료를 앞두고 기름시장에서 사재기와 가격조작, 공급 축소 등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정유사들은 지난 4월 정부의 인하 압력에 떠밀려 휘발유와 경유값을 3개월 시한으로 ℓ당 100원 인하했다. 하지만 주유소들은 인하 전 물량이 다 팔리지 않았다는 핑계로 소비자가격 인하에 시일을 끌었고 그 폭도 공급가 인하에는 훨씬 못 미쳤다.

그러다가 할인종료 날이 다가오자 정유사와 주유소가 묘한 줄다리기를 벌이며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있다. 기름이 없다는 이유로 판매를 중단하거나 일부러 값을 높게 책정해 사실상 판매를 기피하는 주유소가 늘고 있다. 주유소 사업자들은 정유사들이 할인가격 원상회복을 앞두고 공급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주유소와 대리점 등 유통업계의 사재기에 의혹의 눈길이 강하게 쏠린다. 오를 때는 빨리 확실하게 올리고 내릴 때는 조금씩 느리게 한다는 상혼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정부는 가뜩이나 물가인상 압력이 높아지는 때에 기름값이 갑자기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재기와 판매거부 등 위법행위에 사업정지와 형사고발로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물가안정 차원에서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방침은 정부가 다급하면 써먹던 수법으로 대부분 실효성 없는 엄포에 그쳤다. 그런 학습효과 때문에 효과를 내리라고 기대하는 소비자는 이번에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정부가 소비자가격이 너무 높다고 판단했다면 기름 유통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이며 세수와 물가안정 등 정책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화들짝 놀라 정유업계 손목부터 비틀어 가격인하 압력을 가할 게 아니라 시장 바닥의 흐름을 제대로 분석, 면밀한 대책을 수립해야 했다. 기름값을 3개월 한시적으로 인하했다가 다시 올리는 방식은 유통구조 개선이나 거래질서 확립과는 전혀 무관할 뿐더러 오히려 가격 급등락 과정에서 물가를 자극할 소지가 컸다.

할인종료를 앞두고 더욱 혼탁해진 시장을 진정시킬 책임은 1차적으로 단추를 잘못 끼운 정부에 있다. 업계를 향해 엄포만 놓을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먼저 유류세를 내려 시장에 분명한 의지를 보이고 업계에 유통구조개선과 신용카드 수수료율 조정 등 추가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아울러 대형마트 주유소를 더 늘려 가격 선도 기능을 맡겨야 한다.

지난해 국세를 7조원이나 초과징수했고 올해도 세수 실적이 매우 좋다고 한다. 유류세 인하에 따르는 세수감소만 걱정할 때가 아니다. 수입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줄었는데 생활비는 날로 치솟아 고통 받는 소비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얼어붙은 경기도 세율 조정으로 기름값이 내려야 살아날 기미를 보일 수 있다.

편집인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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