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78) 마음이 편해 낮잠이 달다 기사의 사진

볕 가리개를 둘러친 노인이 책 꾸러미에 팔베개한 채 널평상에 누웠다. 깨나른한 낮잠이 슬며시 파고든다. 간밤에 비 왔나, 나지막이 안개가 나무 허리를 감싸는데 버들가지 나부대지 않아 노인의 잠이 달디 달다. 거불거리던 새조차 복숭아 가지에 앉아 날개를 얌전히 접는다. 낮곁의 뜰 안이 꿈결마냥 고요하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낮잠 그림이다. 여름철 졸음이 머리채를 끌어당길 때는 짧은 오수가 양약이다. 보노라니 눈꺼풀이 겉따라 풀린다. 나이 든 단원은 무료한 한낮에 자주 졸렸던 모양이다. 그의 당호(堂號)는 ‘오수당(午睡堂)’으로 알려진다. 또 다른 그의 호도 ‘고면거사(高眠居士)’다. ‘베개를 높이하고 자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림 속에 베개로 쓰인 것이 서책이라 재미있다.

벌건 대낮에 잠자는 제자를 보고 공자는 화를 냈다. 썩은 나무는 조각을 못하고 허물어진 담장은 회칠하지 못한다며 나무랐다. 학문을 하려면 촌각을 다퉈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단원은 달콤한 낮잠을 편든다. 그림에 베껴놓은 시구를 보니 알겠다. 왕유의 ‘전원락(田園樂)’이다. ‘복사꽃은 지난 밤비에 다시 붉고/ 버들은 봄 안개를 둘러 푸르네/ 꽃 떨어져도 아이놈은 쓸지 않고/ 앵무새 울어도 산(山)사람은 잠만 자네’

봄날 풍정을 그렸는데 맛문한 여름의 꿀잠과도 맞다. 할 일 없어서 낮잠 자는 게 아니다. 마음이 편해서 잔다. 눈이 바깥을 보면 마음도 바깥으로 간다. 마음을 거두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 여름날의 낮잠은 번쇄한 시름을 다독여 준다. 잠시 눈을 감아보라. 바쁘면 하루가 짧고 고요하면 하루가 길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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