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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기사의 사진

1976년 무렵 대학 캠퍼스에서 보았던 영화 포스터 제목입니다. 제목이 신선했지요. 정말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는 불안하겠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후에 보니 같은 제목의 책이 있더군요.

영화와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이 제목을 꺼낸 든 이유는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보다는 공을 차는 사람의 불안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해서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페널티킥은 골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골키퍼는 못 막아도 비난받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공을 차는 사람은 성공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비난을 받아야만 하기에 더 불안할 것입니다.

페널티킥 실축이라면 제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건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을 1969년 호주와의 월드컵 예선전입니다. 당시 한국은 월드컵 출전이라는 비원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주 오랫동안 나간 본 적이 없어 그야말로 전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그날 동대문운동장에서 호주와 격돌했는데 그 게임에서 이기면 홍콩에서 출전 티켓을 놓고 마지막 한 판을 벌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코어 1대1에서 한국이 후반에 페널티킥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선 키커가 임국찬 선수였습니다. 당시 임 선수는 한국에서 가장 페널티킥을 잘 차는 선수였기에 누구도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골키퍼가 임 선수의 볼을 막아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페널티킥을 실축했다고 이민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한국이 국가주의가 강한 나라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그라운드에서 쓰러질 각오로 뛰어야 했고 최선을 다했어도 국가에 해가 되었다면 비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얼마 전 최성국 선수도 승부조작에 가담했음을 고백했고 현역 국가대표 선수도 연루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성남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고 합니다. 끝은 어디일까요?

최성국 선수는 코치에게 말했으나 묵살당했다고 했으니 코칭스태프와 구단이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심이 가는군요. 수사가 확대되고 장기화될수록 축구에 대한 신뢰도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단호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검찰 수사만 쳐다봐서는 곤란하겠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페널티킥 실축으로 이민까지 갔던 시절을 생각하니 국가주의와 함께 축구에 대한 순수함도 느껴지는군요. 임국찬 선수가 승부조작에 관여한 것도 아니고 파렴치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조국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순수하게 축구를 아끼고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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