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장현승] 보이지 않는 거대한 에너지 기사의 사진

21세기를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라고들 한다. 다양성이란 모든 나라의 문화적인 특성들을 말하고, 존중이란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다양성이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과거와 달리 이제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문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외국인 거주자가 100만명을 넘었으며 이 수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나라마다 언어와 피부색이 다르듯이 문화적인 특성 또한 다를 수밖에 없고,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종교도 다르다. 그러나 그 다름이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양성 존중의 본질일 것이다.

다양성은 존중돼야 한다

지난 일본 대지진 때 우리는 구호현장에 소방대원들을 보낸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의 구호의지를 달갑게 맞이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그들 문화에선 자선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진이나, 태풍, 쓰나미 등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힘에 맞서며 살아온 역사로 인해 공동체 의식이 개인과 가족의 안위보다 우선하며, 질서에서 이탈함으로써 훗날 공동체의 비난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훈련을 받아 온 것이다.

우리에게 자선이란 가난하거나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딱하게 여겨 도와주는 일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겐 남의 동정과 도움을 받는 것이 고마운 일이기보다는 오히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자선이란 오직 공동체 구성원들이 대등한 관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으로 이해될 뿐이다.

이처럼 지구촌에서 이웃사촌으로 살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를 염려하게 되는 것은 자선이라는 의미조차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구촌에서 다양성의 존중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된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유추해 보건대 그 이유는 분명하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전혀 다른 이해를 갖게 되는 것은 인식의 괴리를 만들어 낼 것이고, 종국에는 다툼이 일어날 것이며, 이익의 조정이 개입되면서 정의의 객관적인 기준은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죽는다. 그에게도 이름은 있다. 오사마 빈 라덴. 3000명이라는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범죄 집단의 수괴로 처형됐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겐 제국주의에 맞선 한 열사의 순교로도 조형된다. 처형과 순교 사이에 존재하는 이 인식의 괴리가 과연 좁혀질 수 있을까? 다만, 이런 유형의 문제들이 일어나기 전에 다양성의 존중을 화두로 삼게 된 것에 대해 찬사와 기대를 갖는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링컨이 변호사로 있던 시절 에드윈 스탠턴은 틈만 나면 링컨을 모욕했다. ‘저런 애송이 변호사와 무슨 일을 같이 하겠나.’ 그리고 링컨이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도 스탠턴은 ‘깡마르고 무식한 링컨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국가적 재난이다’라고 공격했다. 1861년 3월, 링컨은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 후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결정을 내린다. 자신을 괴롭히던 정적 스탠턴을 국방장관이라는 중책에 임명한 것이다. ‘이 난국을 해결할 소신과 추진력이 있는 사람은 스탠턴뿐이다’라며.

그리고 1865년 4월, 링컨이 암살을 당했을 때 스탠턴은 누구보다도 슬퍼하며 그의 시신 앞에서 말한다. “링컨의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는 이 시대의 위대한 창조자다.” 그렇다. 사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사랑하는 마음과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행위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장현승(과천소망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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