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박정희·박근혜 기사의 사진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치고 부모와 동기(同氣)를 생각하면 가슴 시리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만, 그중에서도 기자는 누구보다 더한 편이 아닐까 싶다. 기자는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8남매 중 외아들이라는 덕(?)으로 형편에 넘치게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부모는 물론이고 위아래 누이 7명의 희생을 먹고 자란 셈이다. 부모와 누이들이 그렇게 기자에 올인하면서 걸었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목울대가 뜨거워진다.

물론 기자의 경우가 유별나지만, 자식은 많고 다 제대로 교육시킬 형편이 안 됐던 우리 부모 세대들은 맏아들 하나만이라도 힘닿는 데까지 가르쳐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리’라는 속담처럼, 자식들 중 큰 인물이 하나만 나와도 집안을 다 건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처럼 모두를 다 챙길 형편이 안 되면 될성부른 자식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키워 집안을 일으켜보자는 것이 경제학으로 말하자면 불균형성장이론일 터이다. 재원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데 균형성장을 시킨답시고 이를 여러 사람, 여러 산업에 고루 나눌 경우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대기업 또는 제철, 중화학 등 특정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그들에게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그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밀어붙여 성공한 경제정책이다.

지금은 박정희 시대가 아니다

최근 여당까지도 복지정책을 쏟아내는 것과 관련하여 보수 쪽으로부터 포퓰리즘 논란이 커지고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더 높아지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은 표를 얻기 위해 선심정책을 쓰는 대신 욕을 먹어가면서 국가백년대계 차원에서 경제정책을 썼다는 것이 그 주 내용이다.

틀리지 않는 얘기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시대 상황의 변화다. 박 대통령이 처음 집권했을 때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를 조금 넘었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사실상 종신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그때는 국민 각자가 80달러씩을 나눠 먹어 없애버리느니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목돈을 만들어 될성부른 기업이나 산업에 투자하는 게 효과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했다. 또 박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반대가 없지 않았으나, 권력 구조상 거기엔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다. 정권은 5년마다 국민, 특히 절대다수인 서민과 중산층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그래서 그 권력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국민소득 80달러 때처럼 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대기업이나 특정분야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불균형성장정책을 쓰자고 하면 이게 받아들여지겠는가. 옛날 지주와 소작농 시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대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데 중산층은 무너지고, 중소영세업자들과 서민들의 사정은 날로 피폐해져 가는 게 현실인데 말이다.

보수 쪽이 포퓰리즘을 개탄하면서 주장하는 것들 중 하나로 법인세와 고소득자 소득세 추가감면 내용 등이 들어 있다. 세금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기업의 투자와 고용, 그리고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한 사고의 근저에는 기업과 고소득자를 더 키워놓으면 그 음덕이 서민들에게까지 흘러넘치게 된다는 일종의 불균형성장이론이 자리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이다. 또 설령 그게 국가백년대계 차원에서 바람직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정권에게 이를 밀어붙일 힘이 있는가.

박근혜는 시대를 읽고 있다

일각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복지에 관한 구상을 아버지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비교하면서 좌편향이라고 비판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박 전대표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국민 절대 다수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라도 특정기업, 특정 산업을 육성하여 그 음덕을 보자고 호소해서 먹힐 박정희 시대가 아니다. 이제 성장 발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열매를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누수 없이 효과적으로 나누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그 흐름은 불가항력이다. 기자의 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딸이라고 차별대우해도 받아들이던 보릿고개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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