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십니까? 2012년은 한국교회 해외 선교 100주년… 한국세계선교협의회 2012년 2월 필리핀서 기념 포럼

아십니까? 2012년은 한국교회 해외 선교 100주년… 한국세계선교협의회 2012년 2월 필리핀서 기념 포럼 기사의 사진

한국교회가 해외 선교를 시작한 지 내년으로 100주년이 된다. 1907년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에 파송된 첫 선교사라면 본격적인 타문화권 선교는 1912년 장로교 총회에서 선교사를 중국에 파송하기로 결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한국교회는 이듬해 박태로, 김영훈, 사병순 선교사를 중국 산둥성에 파송하면서 해외 선교의 문을 열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장로교 총회가 조직돼 해외선교사 파송을 청원한 시점을 기준으로 내년을 100주년으로 정하고 2012년 2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관련 포럼을 개최하기로 했다. 100여명의 선교사들이 모여 ‘아시아 선교 역사와 미래’를 논의할 예정이다.

◇타문화권 선교 역사=한국교회의 해외 선교 활동은 1945년 해방 이전까지 미주, 일본, 만주, 시베리아, 중국 산둥성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산둥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흩어진 한국인 이주민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디아스포라 선교였다.

1912년 9월 장로교 총회가 창립되고 그 기념으로 산둥성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1912년과 다음해 총회는 전국 교회가 매년 추수감사주일을 선교주일로 지켜 그 헌금을 해외 선교비로 충당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미국 북장로교 찰스 클락(곽안련) 선교사는 한국교회의 산둥성 선교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1912년 조선총회가 창립됐다. 이 경하할 만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교회는 대연보를 거출하여 3인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됐다. 이는 조선 교회가 선교 받은 지 28년밖에 안 된 때였다. 실로 세계에 유(類)가 없는 경이적 사실이 아니고 무엇이랴.”

산둥성 선교사는 1937년까지 총 5기에 걸쳐 9명이 파송됐다(표 참조). 선교사들은 라이양(萊陽)을 비롯해 지모(卽墨), 칭다오(靑島) 일대에서 활동했다. 현재 생존해 있는 방지일 목사는 37∼57년까지 20년 간 칭다오에서 활동한 제5기 선교사였다.

◇산둥성 선교사들이 주는 교훈=당시 선교사들은 현대 선교 관점에서도 큰 의미를 남겼다. 한국 선교사들은 현지 중국교회에 소속돼 활동했다. 이는 타문화권 선교에서 본받을 점이라는 게 선교전문가들의 평가다. 선교지 교회와 연합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원하는’ 선교가 아닌 현지인 입장을 존중했다는 점에서 선교학적인 모범 사례에 속한다.

산둥성 선교는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한국교회 스스로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중국교회나 당시 한국에서 활동 중인 미국 선교사에게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그만큼 해외선교에 대한 열정과 사명이 컸음을 보여준다. 당시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신자 상당수가 폐쇄적인 조선 사회에서 기독교를 통해 개화된 여성들이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선교사들의 철저한 삶과 복음전파 정신도 돋보였다. 이들은 한자를 잘 알았을 뿐 아니라 성실하게 중국어를 배워 2년 안에 설교할 만큼 회화능력도 뛰어났다. 순회 전도를 통해 총 10년 간 40개의 교회를 설립하고 3개의 노회를 조직했다.

한정국 KWMA 사무총장은 “산둥성 선교사들은 복음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선교지를 향했던 믿음의 사람들이었다”면서 “의료나 교육 사역이 아니라 단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었다”고 말했다. 한 사무총장은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가 선교라는 거룩한 사명 앞에서 보다 준비된 선교사들을 파송하기 위해 보다 연합하고 정보를 교류해 중복지원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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