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79) 분수를 모르면 욕 된다 기사의 사진

단속곳 살며시 드러낸 처녀가 마당을 질러간다. 길게 드리운 삼단 머리가 칠흑 같고, 끄트머리에 달린 치자색 댕기가 곱다. 무슨 낌새를 챘을까. 그녀가 고개를 막 돌리려는 참이다. 어이쿠, 저런! 문지방 너머로 얼굴 들이민 영감, 지금 그의 시선이 뜨겁다. 살랑거리며 걷는 뒤태를 훔쳐보다 저도 몰래 수염 사이 입이 헤벌어졌다.

영감님 지체가 명색이 양반이다. 제갈량이 쓰던 와룡관 번듯하고 콧등에 올린 안경에다 방안에 그득한 서책으로 미뤄보면 글줄깨나 읽은 사족 아닌가. 책을 보다 마침 처녀가 지나가자 한눈이 팔린 게다. 아니, 눈만 판 게 아니라 몸까지 내밀어 그녀를 좇는다. 한 가닥 체면이 남아 놀라긴 한 모양이다. 처녀가 뒤돌아보자 엉겁결에 손에 든 장죽을 떨어뜨린다.

어쩌자고 저럴까. 늙은 음심이 망측하다. 자고로 수신이 잘 된 어른치고 여색을 멀리하지 않은 예가 없다. 선조대의 학자 토정 이지함은 한창 피가 뜨거울 때도 헤프지 않았다. 밤중에 외간 아낙이 그의 방안에 들어와 정을 통하려 하자 몽둥이 찜질해가며 내쫓았다. 중종의 문신 정암 조광조도 추상같다. 그를 사모한 규수가 월담까지 해서 처소를 기웃거리자 대뜸 나뭇가지 꺾어오라고 호령했다. 회초리질 당한 규수가 다음날 목을 맸다는 야담이 전해질 정도다.

하물며 나잇살 든 영감이 분수를 몰라서야 쓰겠는가. 점잖지 못한 노추(老醜)가 백일하에 드러난 풍속화다. 관음을 절묘하게 잡은 솜씨는 혜원 신윤복의 눈썰미를 닮았다. 황혼인들 욕정이 없겠느냐고? 애먼 소리 하지 말자. 꽃다운 처녀는 짝이 따로 있다. 노년의 지혜를 돌이키면 된다. 참고 견디는 것!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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