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명희]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기사의 사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치권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았다. 지난 6일 외신 기자간담회에서의 발언 때문. 박 장관은 “포크 배럴(pork barrel·돼지고기 통)에 맞서 재정 건전성을 복원하고 재정지출을 지속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리하는 등 재정규율을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포크 배럴은 미국 정가에서 정치인들이 지역구나 정치자금 후원자를 위해 선심성 예산을 확보하려는 경쟁을 빗대 사용된다. 돼지고기 통을 던져주면 노예들이 몰려드는 데서 유래됐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반값 등록금과 무상급식 등 복지요구가 쏟아져 나오는 데 대해 ‘나라 곳간’을 굳건히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이다.

정치권은 당장 발끈했다. “서민경제를 살리려고 뛰는 정치권을 싸잡아 돼지에 비유한 망언”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장관이 유식해서 포크 배럴로 바꿔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 정부의 친서민 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어 그런 것” 등 박 장관을 몰아세우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박 장관은 지난달 2일 취임식에서도 “우후죽순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페르시아 군대에 맞서 싸운 스파르타의 왕)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테르모필레 협곡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전의를 다졌다.

‘반값 등록금’이니 ‘무상급식’이니 ‘무상의료’니 하는 말은 유권자들의 귀에는 달콤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밀턴 프리드먼이 자주 말했듯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반값 등록금이나 무상급식을 실현하려면 누군가는 부담을 더 져야 한다. 세금이 들어가야 하는 만큼 내 세금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고, 당장은 세 부담이 늘지 않더라도 우리의 자손들이 짐을 짊어져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33.5%로 선진국에 비해 아직은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복지지출을 늘리다 재정위기로 파탄 난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이나 세수는 줄어드는데 세출만 늘리다 GDP의 200%가 넘는 빚더미에 깔려 몰락한 일본 사례가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재정부가 한국조세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작성한 2050년까지의 장기재정전망 추계를 보면 조세부담률 수준과 연금·의료 등을 현행 제도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2020년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GDP의 42.6%, 2030년 61.9%, 2040년 94.3%, 2050년 137.7%에 달한다. 저출산·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국가채무 증가속도는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

정부 부처들이 요구한 내년 예산·기금규모는 올해보다 7.6% 많은 332조6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대학등록금 인하방안과 취득세 인하 조치에 따른 정부 보전분 등 대형사업에 따른 지출요구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상태여서 실제 예산 요구 증가율은 8%대 후반에서 9%대 후반이 될 것이란 게 재정부 추정이다. 2014년 균형재정을 이루겠다는 정부 목표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20.7%(2008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8번째로 낮다. 세금에 각종 연금 등 사회보장비용을 합한 금액을 GDP로 나눈 국민부담률도 27%로 OECD 평균(34%)보다 낮다.

‘덜 내고 덜 복지혜택을 받을 것인가, 선진국들처럼 더 내고 더 많은 복지혜택을 누릴 것인가.’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없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선진국들 같은 복지혜택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은 무리다.

박 장관이 취임 초 다짐한 대로 ‘공동목초지의 비극’(공동 목초지에 각자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더 많은 양을 풀게 되면 양들이 풀을 다 뜯어먹어 결국 목초지 자체가 황폐화된다는 이론)을 막는 나라 곳간의 파수꾼 노릇을 충실히 하기를 바란다. 욕을 먹더라도, 아픔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편한 길보다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지 않을 가시밭길을 걷길.

이명희 경제부 차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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