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80년대 용팔이사건’ 김용남씨 “옥한흠 목사 설교로 구주 영접 어느새 간증 집회 100회 넘어”

80년대 용팔이사건’ 김용남씨 “옥한흠 목사 설교로 구주 영접 어느새 간증 집회 100회 넘어” 기사의 사진

정치깡패 용팔이가 복음전도자로 변신했다. 거친 욕은 축복의 언어로, 상대를 가격하던 주먹은 기도의 손으로 변했다. 김용남(61·사진)씨의 이야기다.

2002년 서울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전 그에게 주먹질은 생계수단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해요. 예전의 모습은 보이지 않죠? 제가 보기에도 예뻐요. 허허.”

전라도 순천 출신인 그는 과거 잘나가던 ‘기도’였다. 기도는 나이트클럽 문제처리 해결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씨름 장사였던 부친으로부터 튼튼한 골격과 힘을 이어받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두 학년 위의 형들을 두들겨 패고 다녔습니다. 싸움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었어요. 맞아도 아프지 않고 싸움에서 이기면 큰 희열이 느껴졌어요.”

1966년 상경한 김씨는 남산공업고 3학년 때부터 서울 을지로 모 호텔 나이트클럽으로 출근했다. 전국에서 주먹 꽤나 쓴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끌어내 한번에 고꾸라뜨린다고 해서 용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키 1m65, 몸무게 60㎏의 왜소한 용팔이가 유명세를 떨치자 서울 내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그러다 80년대 초반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었다. 87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용팔이 사건(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에서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이때 200명의 조직원을 동원했다. 1년4개월의 도피생활 끝에 붙잡혀 2년6개월간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출소 후 전과 7범의 용팔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손대는 사업마다 망해 월세방을 전전했다.

“하도 돈이 궁해 작곡가 조은파 선생님께 돈을 빌리러 갔는데 대뜸 교회에 가자고 해요. 돈 좀 얻어낼 생각으로 간 곳이 사랑의교회였는데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며 천국과 지옥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옥 목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천국에 안 갈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그는 ‘공짜로 준다는 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결신카드를 썼다. 2003년 3월부턴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필사도 했다. 이상하게 예배에 참석만 하면 눈물이 났다.

“신기해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가슴에 팍 와 닿았어요. 5번 필사한 말씀이 정말 사람을 살리더라니까요. 필사하면서 중이염이 낫고 술 담배를 끊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한숨 걱정 근심은 사라지고 마음에 평화가 왔습니다.”

그는 전국을 다니며 50년 용팔이 생활을 지운 그리스도의 보혈을 간증하고 있다. 벌써 100회가 넘는다. 그가 변한 모습을 보고 딸과 아들, 아내 순으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제 안에는 수천억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있거든요. 그 기쁨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려 합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