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엄상익] 문재인과 민동석 기사의 사진

“광우병 소고기 파동엔 정치인들의 거짓과 비겁한 침묵이 도사리고 있다”

요즈음 ‘운명’이란 책이 베스트셀러다. 청와대의 높은 담 안쪽 얘기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그중 특별히 시선이 가는 부분은 광우병 파동 대목이었다. 국민들이 좋아하는 소고기를 둘러싼 전 정권과 현 정권 그리고 언론의 지능적인 거짓말대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같이 1950년대 전반부의 가난한 환경 속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소고기에 대한 특별한 향수가 있다. 소원이 소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것이었다. 그런 행복의 상징을 언론이 독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PD수첩은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백인과 다른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은 광우병에 걸린다고 방송해 국민들을 미쳐 날뛰게 했다. 결국 국민들을 광란 상태로 몰아넣은 건 소고기가 아니라 거짓과 허위였다. 소고기 협상을 주도했던 대통령비서실장 문재인과 협상대표 민동석의 말과 글도 서로 상반된다. 둘 중 하나는 거짓이라는 얘기다.

공정한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미워해야 할 것은 거짓말이다. PD수첩 재판을 여러 번 방청했었다. 증인으로 출석했던 민동석 협상대표는 문제의 발단이 경험 없는 장관의 좁은 생각과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반미감정이 높았던 시기, 명분에 편승한 장관은 엑스레이 검사기까지 동원해 뼛조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미국산 쇠고기를 전부 돌려보냈다. 마치 청(淸)말 임칙서가 영국제 아편을 모두 수장시키고 기세등등한 것과 같았다.

그러나 소고기는 아편이 아니고 현실은 사대주의 같은 케케묵은 관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은 한국의 자동차나 휴대전화기가 제일 많이 팔리는 시장 중 하나다. 고객을 왕이라고 부르고 허리를 굽히는 것은 개인 장사꾼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비슷하다. 사대주의가 아니라 돈 때문이다. 팔아주면 그쪽의 물건을 사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 상식적인 논리가 무시된 편협한 국수주의였다. 미국 의회가 분노했다. 미 상원에서 바이런 도건 의원은 한국의 현대자동차 70만대를 하나하나 조사해서 그 가운데 한 대라도 흠이 있으면 전체를 한국으로 돌려보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국제무역 환경을 무시한 장관과 정치인들의 좁은 생각이 엄청난 화를 불러일으켰다.

다급한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국제 기준에 따라 한국 소고기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민동석 차관은 법정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상 무조건 항복으로 해석했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그의 책 ‘운명’에서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근거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통화 요지를 제시했다. ‘한국의 농림 당국이 무리한 처리를 함으로써 미국의 의심을 산 점을 인정하며 앞으로 직접 나서서 소고기 문제를 관리하겠다. 다만 소고기 수입은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연말 대통령 선거의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대만 홍콩 일본 등과 비교해 균형적으로 해결되는 방안을 전략적으로 채택해 달라.’

일단 문제를 대선 이후 다음 정권으로 넘긴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이 되자 소고기 문제를 전 정권에서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민동석 협상대표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각서까지 써 달라고 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 협상이 끝이 났다. 진공상태가 왔다. 정치인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일부 정치세력이 그걸 빌미로 불을 붙이고 방송은 기름을 부었다. 이게 법정에서 봤던 대충의 내용이었다. 결국 배경에는 국수주의와 포퓰리즘으로 분장한 이념대결, 그리고 정치인들의 거짓과 비겁한 침묵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총선과 대선의 시절이 다가온다. 벌써부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정치인들의 달콤한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직한 현실을 알 권리가 있다. 헛말을 하는 정치인은 적어두었다가 선거에서 꼭 낙선시켜야 한다. 관료들도 국가를 위해 일해야지 정치의 심부름꾼이어서는 안 된다. 진급에 목을 매고 사기의 공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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