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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배병우] 실패에서 배우지 않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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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6일전쟁(3차 중동전쟁)은 당시 불확실하던 신생국가 이스라엘의 ‘생존’을 확정지은 결정적인 전쟁이었다. 이스라엘군은 기습공격으로 중동 최강이던 이집트군을 포함, 아랍국 공군전력을 개전 수 시간 만에 괴멸시켰다. 전쟁 이후 이스라엘 영토는 3배로 늘었다.

대승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군은 종전 후 지휘가 제대로 됐었는지, 전략과 전술은 적절했는지에 대해 철저한 자기반성과 점검을 했다. 고위 군 간부 몇 사람은 옷을 벗었다. 이러한 ‘되짚어 보기’가 패전 때엔 어떤 강도로 이뤄졌을지는 더 물을 필요도 없다. 이스라엘 경제성장의 비밀을 분석한 책 ‘창업국가(start-up nation)’에 나오는 얘기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는 10년 새 외환위기를 두 번 겪었다. 하지만 2008년에 위기가 재발한 데 대해 정부 차원이든, 국회 차원이든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고 책임 추궁이 있었는가? 2009년 들어 최악 상황이 지나가자 책임규명론이 터져 나왔다. 정부는 ‘급한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며 넘어갔다. 이후 책임론은 쑥 들어가고, 대신 세계에서 위기를 가장 잘 극복했다는 성공신화가 넘쳐났다. ‘G20 서울 정상회의 찬가’는 그 결정판이었다. 2008년 위기의 원인은 수수료 수입을 노린 은행들의 단기 외화차입 확대, 몸집 불리기에 올인해 대출확대 경쟁을 벌인 금융사들의 모럴 해저드, 외환위기를 겪은 국가라는 낙인효과를 과소평가한 외환당국의 판단 미스 등 복합적이다. 하지만 2006년 이후 단기외채비율과 예대율 상승 등 각종 건전성 지표에 울리는 경고음을 무시한 금융감독의 총체적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정부도 위기 이후 방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은행들의 선물환포지션 한도와 거시건전성부담금(은행세) 도입이 대표적이다. 다만 자본유출입 변동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둔 외환 건전성 대책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위기의 원인인 금융감독의 구조적 문제를 되짚어 본 것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였다. 기재위의 노력은 한은에 제한적이나마 금융회사에 대한 단독조사권을 주고 한은의 목적에 ‘금융안정’을 추가하는 한은법 개정안으로 구체화됐다. 이 법안은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최후의 대부자인 중앙은행의 거시건전성 감독 책임을 강화하는 위기 이후 국제적 흐름에도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법안은 처음엔 기획재정부, 이후엔 감독권을 독점해 온 금융감독원을 관할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거의 폐기 상태였던 이 법안은 저축은행 부실 사태로 새 동력을 얻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한은의 단독조사권 등 ‘알맹이’를 뺐음에도 한나라당 소속 정무위원들의 항의로 결국 입법에 실패했다.

국회 정무위나 금융위원회의 반대 논리는 이렇다. 복수의 금융감독권이 행사되면 금융회사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은법 개정안에 포함된 조사권은 엄밀한 의미에서 금융감독권과는 거리가 있다. 금융회사 인허가권이나 제재권이 아니라 금융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현지 실사를 하는 권한일 뿐이다. 이마저도 금감원과 같이 조사를 나가야 하는 것으로 후퇴했다. 2차 외환위기를 겪고도 중앙은행에 이 정도의 조사권조차 주지 않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권 독점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부처 이기주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저축은행 부실 사태도 마찬가지다. 당초에는 감독권 분산을 포함, 모든 사안을 논의하겠다며 거창하게 시작했던 금융감독혁신TF는 관료와 민간위원 간 이견만 확인하고 사실상 종결됐다.

이처럼 근래 발생한 우리 경제 시스템의 2대 실패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자기점검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정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국회마저 상임위 별로 나뉘어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은 이상 징후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러한 ‘자기교정 장치’의 고장을 한국의 최대 국가리스크로 볼지 모른다.

배병우 경제부장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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