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77) 중종반정의 주역 류순정 초상화 기사의 사진

조선 전기의 문인 류순정(1459∼1512)은 1506년(연산군 12년) 9월 1일 저녁, 박원종(1467∼1510) 성희안(1461∼1513) 등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폭군을 권좌에서 축출한 인물입니다. 이튿날 중종을 조선 제11대 왕으로 옹립한 그는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책봉되는 영광을 안았답니다. 이후 중종의 신임을 얻어 정권 핵심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중종반정 공로로 청천부원군에 봉해지고, 우의정과 병조판서를 겸직하면서 이과(1475∼1507)의 반란을 다스려 정난공신(定難功臣) 1등에도 책록됐지요. 1509년에는 좌의정에 오르고 이듬해 삼포왜란(부산포 등에서 왜인들이 일으킨 폭동)이 발생하자 경상도 도원수로 출정, 난을 평정했습니다. 1512년 영의정에 올라 재직 중에 숨지기까지 최고의 관직을 누렸답니다.

진주류씨는 류순정 이후 대대로 한양에 살면서 명가로 거듭나 그의 조카 류보(?∼1544) 역시 중종 때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류순정의 성품은 이에 대한 자료가 없으니 자세히 알기 어려우나 정국공신으로 책봉될 당시 도화서 화원이 그린 그의 초상화(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1호)를 통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매우 온화하게 표현됐으며 눈동자는 생생해 살아있는 듯하고 눈썹과 수염은 올마다 섬세하게 묘사됐습니다. 귓바퀴는 옅은 갈색 선, 눈의 위 꺼풀은 검은 묵선, 아래 꺼풀은 갈색 선으로 자연스럽게 그려 넣고 머리에는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가슴에는 금색의 화려한 공작 그림을 넣은 관복을 착용한 모습이 귀족의 품위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얼굴과 전신의 정면을 70% 정도 보이게 하는 7분면으로 입체감을 살린 초상화는 현재 몇 점 전해지지 않는 16세기 초 조선 공신 초상화의 전형인 동시에 바닥에 채전(彩顫·채색 비단)이 깔려있는 첫 사례로 가치가 매우 큰 문화재랍니다. 의자에 방석을 붙들어 맨 형태, 주머니와 접이식 종이부채 등 장신구는 당시 공신상의 의복을 파악할 수 있게 합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8월 14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한양의 진주류씨’는 류순정의 초상화가 주인공입니다. 그의 후손인 진주류씨 문성공파 문중(종손 류원배)이 2004년과 2009년에 기증한 것으로 류순정 전신상 2점과 반신상 2점, 그 아들 류홍 초상화 1점, 류순정의 영정 보관함에서 나온 천연 방충제인 의향(衣香)과 부용향(芙蓉香) 등이 공개됩니다.

한 사람의 공신 초상화가 4점이나 남아 있는 것은 유례가 없답니다. 대부분 소멸되고 보존되더라도 1점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특히 화면 길이가 173㎝, 전체 길이가 240㎝인 대형 전신상은 실제 사람 크기로 제작된 것으로 초상화 기법 연구에 귀중한 자료랍니다. 연산군과 중종, 두 임금에 걸쳐 부귀영화를 누린 그의 초상화를 통해 정치와 권력의 관계를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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