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80) 전원이 곧 낙원이라네 기사의 사진

녹음이 싱그러운 수풀, 양치기 소년이 바위에 앉아 피리를 분다. 베잠방이 차림에 웃통을 드러낸 그는 머리가 쑥대강이다. 떠꺼머리 짓기에 숱이 모자라 열 살 남짓이나 될까. 아스라이 강가에 드러누운 소, 곁에서 목동 하나가 낚싯대를 드리우는데, 시골 한적한 풍경이 어느 도린곁인지 꿈결처럼 보들보들하다.

일곱 마리 양들은 어깨를 부딪으며 초장에 널린 풀을 뜯는다. 숲에서 어슬렁대던 한 놈이 무리를 놓칠세라 종종걸음 친다. 세상이 저토록 평화로우니 동네 어귀 시비야 뜬소문일 게다. 낙원이 어드메뇨, 전원이 낙원일손, 그 속에 사는 복됨이 하염없이 느껍다. 그림은 18세기 것인데, 수채화마냥 잘고 고운 색감이 오늘 눈에 새롭다. 김홍도의 단짝 화원인 이인문의 재주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림을 본 당대의 안목 홍의영이 소감을 적었다. ‘네가 어찌 황초평의 후신이 아니겠는가.’ 양치기를 보고 한 말이다. 진나라 황초평은 열다섯 살에 양을 치러 갔다가 신선에게 도를 배웠는데, 40년 뒤 형이 그를 찾았더니 동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더라는 얘기다. 그러니 그림 속 저 소년은 정작 애늙은이인 셈이다. 늙어도 목동의 심성이 축나지 않는다면 속세에 살아도 속되지 않을 터.

북송의 시인 황정견도 티 없는 목동을 칭송했다. ‘소타고 마을 앞 멀리 멀리 가는데/ 피리소리 바람타고 언덕 사이로 들리네/ 장안에 명리 좇는 하고 많은 사람들/ 아무리 재주부려도 그대보다 못하리.’ 소 몰고 양 치는 목동의 잡스럽지 않은 맘씨를 노래한 시다. 목동의 노래가 목가(牧歌)요, 목동의 삶이 목가적이다. 어리고 여려야 맑아진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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