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민성] ‘해리 포터’와 공감의 힘 기사의 사진

‘해리 포터’ 시리즈가 2001년 처음 시작된 이후 10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면서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2011년 6월 기준으로 조앤 K. 롤링의 이 소설은 67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4억5000만부가 팔렸고, 영화를 제작한 워너브러더스사가 벌어들인 흥행 수익은 7조원에 달한다. 이 기록은 전 세계에서 흥행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영화의 마지막 편을 통해 계속 경신되고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시리즈물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성공의 배경에는 단순한 문화산업의 원칙을 넘어서는 힘이 숨어 있다.

우선 이 시대가 새로운 신화를 요구한다는 것이 ‘해리 포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문화적 배경이 된다. 첨단 과학이 발달하고 이성이 세계를 지배할수록 어찌 된 것인지 세상이 아름다워지기는커녕 분쟁과 분열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인간다운 삶을 제안하고 실천하게 해주는 힘으로서 신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의와 평화로운 세계의 회복을 위해 간단없는 투쟁을 벌이는 영웅의 삶을 다루는 신화야말로 우리에게 가치 있는 삶의 비전을 던져준다.

신화가 던져준 삶의 비전

젊은 시절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옥스퍼드 대학의 영문학자 톨킨은 환멸적인 인류의 삶에 새로운 비전을 던져줄 수 있는 문학 장르로 신화를 선택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세계 판타지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반지의 제왕’이었다. ‘해리 포터’도 마법과 신화의 세계를 통해 성장의 과제를 안고 있는 전 세계 대중들에게 삶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다. 진정한 스승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차별과 싸우고 편견과 맞서며 볼드모트라는 절대악과 싸우는 작은 영웅 해리 포터는 삶의 비전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멘토가 되기에 충분하다.

‘해리 포터’는 신화의 세계를 다루면서도 현실 감각을 놓치지 않았다. 톨킨이 현실 세계의 대안으로 신화를 선택하면서 완벽한 가상 세계를 구축한 것은 유명하다. 판타지 세계의 지형도, 언어, 그 세계 속의 민담과 민요까지 완벽하게 구축한 다음 ‘반지의 제왕’을 써내려갔다. 그것은 톨킨이 가졌던 현실에 대한 환멸을 반영할 것이다. 하지만 롤링의 ‘해리 포터’는 신화의 세계를 교묘히 현실과 연결시켰다. 영국이 자랑하는 판타지의 전통 위에 학원물, 성장담, 추리소설의 세계를 적절히 버무렸다.

롤링은 톨킨, 디킨즈, 코난 도일 등 영국 문학의 정수를 흡수했다. 그 결과, 신화적인 세계에서도 자신의 삶을 쉽게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반지의 제왕’이 주는 교훈이 현실 세계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과는 달리, ‘해리 포터’의 교훈은 즉각적으로 현실에 반영될 수 있었다. 문학적 성취에서는 톨킨의 업적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대중들과 호흡하는 힘에서는 ‘해리 포터’가 앞선다.

또한 ‘해리 포터’는 독자들과 함께 성장했다는 장점을 지닌다. 소설이 쓰이는 긴 세월 동안 독자인 어린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 갔다. 영화가 만들어진 10년의 세월 동안 관객들은 영화 속 주인공, 그 배우들과 똑같이 나이를 먹어 갔다. 영화와 함께 청춘이 만들어지는 경험, 영화의 마지막 시리즈를 보면서 청춘과 작별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신화의 성장과 현실의 성장이 일치하는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 유일한 시리즈이다.

재미 넘어 의미를 던져야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이 시대의 경쟁력은 공감, 조화, 의미 등에서 나온다고 역설한 바 있다. 문화산업이 재미만으로 성공하는 시대가 지나갔다. 재미와 더불어 시대와 조화를 이루고, 이 시대의 사람들과 공감하며, 삶의 의미를 제시하는 콘텐츠가 힘을 가진다. 이런 콘텐츠가 영국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수많은 스토리텔링 클럽을 지닌 나라, 오랜 이야기의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 재미를 넘어 의미를 던지는 작품은 그런 토대 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최민성 (한신대 교수·문화평론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