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조성기] 용서의 완성 기사의 사진

미국 연극 중에 남편에게 죄를 지어 10년 동안 고민하다가 고백하는 아내의 이야기가 있다. 남편은 그런 걸 가지고 왜 고민해 왔느냐면서 용서해준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때 아내가 오히려 가재도구들을 집어던지며 화를 낸다. 자기는 그 문제로 10년을 고민해 왔는데 그런 식으로 시시하게 몇 마디 말로 용서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한다. 여기서 남편은 용서하는 자로서의 아픔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 이청준의 작품 중에 ‘벌레 이야기’라는 중편이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원작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학교 교사에게 유괴당하여 죽게 된다. 아이의 어머니는 살인범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자살도 기도한다. 주위 사람들의 전도를 받아 교회 생활을 시작한다. 주기도문을 외고 사람들의 권면을 받으며 살인범을 용서해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교도소로 면회를 간다. 그런데 살인범은 감옥에서 전도를 받아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면서 평온한 얼굴로 할렐루야, 아멘을 외친다.

용서 하는자와 용서 받는자

아이 어머니는 교도소를 뛰쳐나오며 하나님께 항변한다. “저놈을 용서할 수 있는 권리는 나에게밖에 없는데 당신이 무슨 권리로 저놈을 용서해주는 것입니까.” 그 어머니는 살인범 사형집행일에 같이 자살을 하고 만다. 여기서 살인범은 용서받는 자로서의 아픔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용서는 용서하는 자의 아픔과 용서받는 자의 아픔이 어우러질 때 완성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주옵소서’ 하는 주기도문은 값싸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용서하는 자의 아픔과 용서 받는 자의 아픔이 함께 진하게 깔려 있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값없이 용서해주시지만 값싸게 용서해주시는 것은 아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시면서 우리 죄를 사하여주신다. 십자가에서 몸이 갈가리 찢기며 겪으신 예수님의 고통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데 도 용서받는 자로서의 아픔을 겪게 된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본질이다.

그 다음, 인간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이루는 숙제가 남아 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나온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탕자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탕자를 용서하고 탕자 역시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문제는 집을 떠나지 않고 집에서 충성을 다한 맏아들이다. 성경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다고 맏아들이 꾸지람을 듣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작은 아들과 맏아들 사이에 용서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형님이 동생을 용서하는 문제, 동생이 형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문제가 그것이다.

지극히 험난한 용서의 과정

용서의 심리학에 관해 빼어난 통찰력을 지닌 루이스 B 스미스는 ‘용서와 망각(Forgive and Forget)’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용서에는 4단계가 있다고 했다. 상처, 미움, 치유, 재결합이 용서의 4단계이다. 이러한 용서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 모른다.

스미스의 저서 제3부 ‘어떻게 용서하나’에 보면 일곱 항목이 나오는데 그 제목들만 보아도 용서의 과정이 무척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서서히 용서한다’, ‘이해함으로써 용서한다’, ‘혼란 가운데 용서한다’, ‘분노하며 용서한다’, ‘조금씩 용서한다’, ‘자유롭게 용서한다’, ‘근본적인 감정으로 용서한다’. 이와 같이 기나긴 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용서의 세계는 인간의 계산이나 상상을 초월해 있는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다.

조성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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