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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자신을 불살라 조선민중 구한 천사들 잠들어

[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자신을 불살라 조선민중 구한 천사들 잠들어 기사의 사진

(21) 광주 양림동 선교사묘원

광주시 남구는 신시가지인 상무지구나 동림지구와 달리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중 풍광이 수려하고 무등산과 조화를 이루며 근경과 원경이 적절히 배합된 곳으로 양림동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양림동 일대 풍경을 만들어내는 출발은 100여년 역사를 지닌 기독교 유적지다. 양림동 108번지에 위치한 선교사묘원은 그 시작점이다.

◇한국인과 함께 살았던 선교사들의 숨결=호남신학대학교 정문에서 신학대학원 쪽으로 올라와 120m쯤 돌계단을 오르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묘원이 방문객을 맞는다. 이곳엔 1895년 한국 선교사로 들어와 나주 목포 광주에 선교부를 세우고 30년간 한국 복음화를 위해 살았던 유진벨(배유지) 목사의 묘를 비롯해 한센병 치료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오웬 선교사 등 22명의 미국 남장로교 출신 선교사와 그 가족의 묘가 있다. 최근 묘역 옆에 전라도 일대에서 사역하다 순교한 23명 선교사의 묘비도 조성 중이다.

묘원에 잠든 22명 선교사는 선교사 본인과 자녀, 친척을 포함한다. 이들은 목사 3명, 의사 1명, 간호사 2명, 자녀를 위한 선교사 1명, 선교사 부인 5명, 선교사 자녀 7명, 선교사 친척 3명으로 구성돼 있다.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북장로교와 달리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복음전파와 함께 실천적 삶을 살며 진정한 선교를 추구했다. 그들은 당시 한센병자와 결핵환자, 빈민과 고아, 과부를 위한 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했다.

차종순 호남신학대 총장은 전라도 지역과 남장로교 선교사의 만남은 기막힌 조화라고 표현했다. 농경문화가 중심인 이 지역 공동체 속에 복음으로 무장한 헌신적인 선교사들이 들어왔고 이들로 인해 의료선교를 위시한 실천적 복음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차 총장은 “의료선교의 발달에 의한 인도주의적 도움이 이 지역 선교의 특징”이라며 “복음주의적 사회봉사가 꽃을 피웠다”고 말했다. ‘신행일치’라는 말도 광주에서 처음 나온 말로, 복음과 삶의 일치는 선교사와 광주지역 교회가 추구하던 신앙의 특징이었다.

◇불꽃처럼 살았던 선교사들=올해 77주기를 맞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서서평) 선교사는 최근 그의 삶이 재조명받고 있다. 1912년부터 광주기독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셰핑 선교사는 간호사역과 교육, 전도에 힘썼다. 성경 지식에 해박해 ‘성경 말씀이 내 핏줄을 타고 흐른다’고 말할 정도로 말씀을 사랑했다. 틈만 나면 성경을 읽었고 “많이 읽을수록 성경 스스로 증거한다”는 말을 남겼다. 몸이 아파도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했던 셰핑 선교사는 말씀을 아는 것뿐 아니라 그대로 살았다.

그는 광주 직업여성과 불쌍한 걸식인, 한센병자들의 대모로 살았다. 고아 14명을 양자로 키웠다. 여성을 위한 활동에도 뛰어들어 광주 남문밖교회(양림교회와 제일교회의 전신) 부인 봉사활동을 위해 ‘부인조력회’를 조직했다. 조력회는 여성들의 헌금으로 좀도리 쌀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후일 한국교회 성미제도의 효시가 됐다.

셰핑 선교사는 초기 파송됐을 때부터 소화기계 한국풍토병으로 알려진 스푸르에 걸려 고생했으며 1934년 54세를 일기로 별세할 때는 풍토병과 영양실조가 이유였다. 그는 쌀뒤주에 밀가루 2홉만 남겼고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는 데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녀의 장례는 광주 최초의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의사였던 클레멘트 캐링턴 오웬(오기원) 선교사는 미국 남장로교 광주선교부 최초의 순교자다. 1898년 목포에 도착해 진료소를 세워 전도와 의료사역을 펼쳤다. 약 봉투에 한글로 성경구절을 써서 나눠줬으며 기독교 서적을 구비해 환자들이 읽게 했다. 1904년부터는 유진벨 선교사와 광주로 이사해 의료선교 대신 복음전도에 힘쓰다 5년 만에 급성폐렴으로 별세했다.

의사 오웬의 죽음 즈음에는 한국 기독교의 새로운 전기가 될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광주선교진료소 원장이었던 윌슨(우월순)은 목포선교병원 포사이트 의사에게 오웬 선교사의 치료를 위해 광주로 와 달라는 전보를 띄운다. 포사이트는 광주 부근에서 여성 나환자를 만났는데 환자를 자신의 말에 태우고 광주까지 데려왔다. 선교사들은 이 환자를 위해 벽돌가마에 거처를 마련하고 오웬이 사용하던 침대와 침구를 제공하면서 치료했다.

헌신적 선교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국인 최흥종 집사는 여기에 감동을 받아 함께 나환자를 돌봤고 이후 자신의 땅 3300㎡를 기증, 광주나병원 완공에 일조한다. 광주나병원은 이후 1927년 여수애양원으로 옮겨지게 됐고 손양원 목사가 원목으로 활동한다.

양림동 선교사묘원 주위로는 선교사들의 이름을 딴 ‘서서평길’ ‘오기원길’ 등이 조성돼 있다. 길 위에는 1904년 12월 25일 남장로교 광주선교부가 지역주민과 첫 예배를 드린 곳을 기념해 조성한 선교기념비를 비롯해 우월순, 피터슨 선교사 등의 자택, 오기원 기념각 등을 만날 수 있다.

광주=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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