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81) 덜 그려도 다 그렸다 기사의 사진

챙이 벌어진 갈삿갓에다 어린애 내리닫이처럼 생긴 도롱이가 수수하기보다 후줄근하다. 비 가리는 우장(雨裝)이 저 모양새면 진갈이 다니는 농투성이이련만 어째서 가래 하나 들지 않았을꼬. 누구인가, 그대는. 짚신 한 짝 안 신고 앞만 보며 걷는 사내,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분인데 거욷한 등짝이 초라해서 가엾고 갈 길이 호젓해서 쓸쓸하구나.

그리다 만 듯 쓱쓱 그은 붓질로 처량한 옆모습을 기막히게 드러낸 이는 17세기 화가 한시각이다. 그림 속에 흘려 쓴 그의 호가 보인다. ‘설탄(雪灘)’이다. ‘눈 여울’, 눈이 녹아 여울을 이룬다는 뜻이 자못 시적인데, 끊어질 듯 이어지고 진하거나 옅은 붓의 자취가 또한 줄여놓은 시의 묘경에 닿는다. 다시 보니, 덜 그려도 다 그렸다.

설탄은 아버지와 사위가 화원으로 그도 같은 일에 종사했다. 말년의 송시열 초상화가 그의 작품이다. 일본에 수행 화원으로 함께 간 김명국은 달마도로 날렸고, 그는 이 그림처럼 먹과 붓을 몹시 아끼는 감필(減筆)의 인물화에 동떴다. 뚝 불거진 눈두덩과 길쭉한 콧방울, 도롱이의 주름선과 부검지, 뒤축을 들고 사뿐사뿐 걷는 맨발이 단출한 선미(禪味)를 제대로 보여주는 가작이다.

말 그림을 본 두보가 ‘살만 있고 뼈가 없다’며 탓했다. 소동파는 외려 두보를 나무랐다. ‘길고 짧은 게 있는데 살진 것만 보는가.’ 다들 보이는 것만 본다. 살과 뼈, 길고 짧음, 다 갖췄다고 명품이 되진 않는다. 소매가 길면 춤 잘 춘다지만 장식과 기교는 군더더기가 되기 쉽다. 겉모습을 그려도 설탄처럼 고갱이를 콕 집어내야 잘된 그림이다. 어디 그림뿐이랴.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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