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선교사 루츠 드레셔 “25년전 6·10 항쟁 거리서 한국민과 함께 흘린 민주화 눈물 아직도 아련”

독일인 선교사 루츠 드레셔 “25년전 6·10 항쟁 거리서 한국민과 함께 흘린 민주화 눈물 아직도 아련” 기사의 사진

1987년 6월 10일. 민주화를 외치는 군중이 서울의 거리 곳곳에서 쏟아져나올 때, 그 틈에는 파란 눈의 외국인 한 명이 섞여 있었다. 독일인 루츠 드레셔(58). 그는 독일서남지구선교회(EMS) 소속 선교사로 87년부터 95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했다. 그는 지난 22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관계자들과 해군기지로 내정된 제주를 방문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드레셔 선교사는 26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30년 전 일부터 꺼냈다.

“81년 독일 현지에 EMS 협력 선교사로 파송된 김원배 목포 예원교회 목사님이 보여주셨던 광주민주화항쟁 영상이 제 마음에 불을 붙였어요.”

‘선교란 국경, 인종에 상관없이 복음과 더불어 빈곤과 질병 독재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평화를 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던 그는 사역지를 한국으로 선택했다. “처음 와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거리에 나갔다가 최루가스에 평생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죠.”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가 죽고 6·10항쟁으로 이어지기까지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했다. “같이 눈물 흘리며 평화적인 시위에 앞장섰던 한국의 교회에서 참 선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89년 드레셔 선교사는 빈민들이 모여 살던 서울 하계동 양돈단지로 들어갔다. 기독교빈민협의회 의장을 지낸 오영식 목사 등과 함께 영은교회에서 공부방과 탁아소 도서관, 노인 치료실 등을 운영하며 빈민 선교를 했다.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렸지만 그들의 신앙은 너무도 순수했어요. 치열한 삶 속에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제가 배웠습니다.”

95년 고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빈민 사역은 계속됐고, 독일 만하임에서도 한국에서 배운 대로 매춘부, 약물 중독자, 노숙인들을 위한 쉼터를 지어 도시빈민 사역을 이어갔다.

2001년 독일 교회와 선교단체협의는 그를 동아시아협력국장으로 선임했다. “늘 그리워했던 한국을 위해 다시 일할 수 있게 돼 기뻤습니다.” 이후 드레셔 선교사는 거의 매년 한국과 일본, 중국을 방문하며 인권 보호와 평화 증진에 힘을 쏟고 있다.

드레셔 선교사는 일본 쓰나미 피해 지역을 들른 뒤 NCCK 정의평화국 관계자들과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그는 “4년째 투쟁을 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부 관계자와 시민대표 찬반 양측이 정기적으로 활발한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 평화적 논의가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드레셔 선교사는 ‘민중신학’의 대가 안병무 박사가 그에게 지어준 ‘도여수(道如水)’라는 한국 이름 뜻대로 살 것이라고 말했다. 물처럼 흘러가는 삶 말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죠. 예수님도 낮은 자리로 임하셨구요. 저는 늘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 옆에 있을 겁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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