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마음이 가난한 자 기사의 사진

영성 신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헨리 나우웬(1932∼1996)은 50세가 되던 해 어느 날 작은 트렁크 하나를 들고 하버드대를 떠났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요, 하버드대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던 그가 학교를 떠나 정착한 곳은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라르쉬였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당연했다. 목회상담과 목회신학, 기독교영성신학자로 이름을 날리며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 했던 지성이 말도 거의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로 옮겨간 이유가 무엇일까.

나우웬은 얼마 후 강연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25년간 성직생활을 했지만 기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모든 사람이 나의 성공을 부러워했지만 그 성공이 나의 영혼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를 하면서 영적 죽음, 곧 탈진에 이르렀음을 알았고 하나님께 해결책을 묻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하나님은 라르쉬 설립자를 통해 해답을 전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 가운데 가서 그들과 함께 살아라. 그러면 그들이 네 심령을 치유할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당대 최고 지성 나우웬의 상한 심령을 치유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해결책은 기묘하다. 누구라도 그것이 묘책이라고 믿기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비밀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있었고 나우웬은 그 말에 순종했다.

영적 거장의 탈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대체 누구인가. 마음이 가난한 자의 이미지는 예수님 말씀 속에서 형상화되어 있다. 예수님은 공생애 첫 대중 연설에서 첫 말씀을 마음이 가난한 자에 대한 복의 선포로 시작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자는 스스로 한계성을 느끼고 하나님 밖에 도와줄 분이 없음을 고백하는 자다. 오만한 자들과 반대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 또 자신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사람들이다. 사회통념상으로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이 없으며 정직해서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들이다. 겁이 많아 무슨 일이든 도전하지 못한다. 대체로 물질적으로 빈궁하고 가난하다.

이런 그들에게 누가 복이 있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새롭게 해 나가신다는 것을 나우웬의 라르쉬 생활에서 보여주셨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 베드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었다.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고기를 잡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가난한 어부였다. 하지만 그는 절대자에게 순종하는 순수한 신앙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사람이었다. 마음이 가난했기에 예수님이 따르라고 할 때 따랐고, 예수님 말씀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였다. 생명의 위협이 오자 예수님을 부인한 것도 마음이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순수하고 가난한 마음이 있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위대한 주의 종으로 쓰임 받는 복을 받았다.

소외된 이들과 살라

나우웬은 라르쉬 생활을 통해 자신의 명성과 지성이 존재의 본질이 아님을 알았다. 지금 장애인들과 함께 있는 그 상황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장애인들이 비록 상처받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순전함과 순결함을 통해 위로를 받고 영혼의 탈진과 공허함에서 벗어났다고 고백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소외되고 여러 문제로 고통 받으면서 스스로 마음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슬퍼하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소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를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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